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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점자새빛 봄호

게시물 정보

작성자 새빛US 작성일19-07-05 14:11 조회2,748회 댓글0건

본문

~

= 차        례 =     


1. 시 마당 : 배꼽 (박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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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2. 생명의 말씀 : 하늘나라에 합당한 신앙 (안요한 목사)
------------
4
3. 인물 마당 : 기도의 사람 로버트 하디 (로버트 하디 Robert Har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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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4. 짧은 글 긴 생각 : 꼭 들려주고 싶은 6가지 좋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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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5.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 아내와 함께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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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6. 건강 코너 : 생활 속 인플루엔자 예방수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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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7. 말씀 테마 : 두려움의 고리를 끊는 방법!! (이찬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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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8.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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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9. 이럴 땐 이런 말씀 : 무조건 감사하게 되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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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0.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김동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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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1. 하나님,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오늘, 믿음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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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12. 내가 용서할 수 있을까? (마크&패티 버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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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13. 갓 포스팅 : 하나님 말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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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 시 마당 =


  배꼽


  박영수

불효가 생각나거든
당신의 중심을 잡고 있는
잘 생긴 배꼽을 바라보십시오.

어머니의 우주와
나의 우주가
탯줄로 연결되어
질기고 질긴 인연의 끈으로
생명을 가꾸었던 흔적이랍니다.

몸과 마음이
방황의 세월 속으로
떠내려 갈 때
잘생긴 배꼽이 맨 먼저 울었답니다.

지금도
몸과 마음의 중심을 잡고 있는
말 없는 태생의 봉인
잘생긴 배꼽을 바라보노라면
한 생명의 무게를 감당하신 어머니가 고맙습니다.
 

 

 


= 생명의 말씀 =


  하늘나라에 합당한 신앙


  안요한 목사

2019년에는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억되는 한 해가 되도록 결단합시다.
우리는 매년 새 해 아침에 새로운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작심삼일로 끝나고 연말이 되면 또 같은 후회를 되풀이합니다.

누가복음 9장 57절을 보면 예수님이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든지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시는 예수님은
“너 같은 사람은 필요없다”고 하시지 않고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홈리스라는 것입니다.
나 어디서 자야 할지 몰라, 따라 다니면 여관비 내고, 네가 가진 것 다 없어질지도 몰라... 그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했지만 아마도 떠났을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만난 후의 삶에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 왜 성령을 보내 주셨을까요?
성령의 도움을 받아 변화된 삶을 살라고요.
변화되지 못한 신자는 생명책에 기록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대제사장의 공문을 갖고 다메섹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다가 태양보다 더 밝은 빛 가운데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납니다.
육신의 눈을 멀고 영의 눈이 뜨입니다.
‘이럴 수가... 정말 이럴 수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내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죄를 용서해 주셨는데 내가 그를 오히려 박해했다니...’
바울은 회심합니다.

삼년이 흐른 뒤 큰 변화를 받아 놀라운 기적을 행합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죽은 자를 살리고 가는 곳 마다 교회를 세우고 부흥시키고 말씀을 전하는 데 부흥사가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나는 죄인 중의 괴수입니다.”라며 고개를 떨굽니다.
이것이 진정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의 자세입니다.
예수님의 죄사함의 은총을 가진 사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바로 하늘나라에 필요한 사람의 자세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일까요?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하고 예수님의 죄사함의 은혜에 감격하며 생명에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께 이용 당하면 오히려 기뻐하고 찬양합니다.
이러한 사람이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칭찬받고 생명책에 기록되는 삶을 산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일생을 예수님께 헌신한 제자들처럼 우리들도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채우기 위하여 예수님께 마음껏 이용당합시다.
교회와 선교를 위해 이용당합시다.
하나님과 심판대에 서는 날 보좌 앞에 놓인 그 어린양 생명책에 우리들의 이름이 분명히 기록되어서 모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점자 새빛 가족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 인물 마당 =


  기도의 사람 로버트 하디


  (로버트 하디 Robert Hardy)

치유자의 마음으로 의대에 입학한 그는 의사의 삶을 살기보다는 의료선교사로써의 소명을 품고 1890년 조선에 방문한다.
하지만 그의 원대한 바람과는 달리 결실이 없는 사역은 계속 되었는데..
절망에 빠진 그를 회복시킨 것은 회개의 기도였다.

“주님 용서하여주옵소서.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무식하여 당신을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용서하여주옵소서...”

당시의 복음의 씨앗은 많은 선교사들을 통해 뿌려지고 있었지만 결실을 미비하였다.
그것은 많은 선교사들의 기도 제목이었다.


1903년 8월 24일부터 30일까지 캐나다의 두 여선교사의 주최로 열린 기도회에서 하디는 성령의 요구하심을 따라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선교사님 저는 오랫동안 조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제사를 지내고 죽은 조상을 섬깁니다.
전 지쳐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노력이 허사가 되지 않을까요?
그들은 절 비웃고, 조롱하였습니다.
여전히 선교사들은 순교를 당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 땅을 섬겨야 합니까?!“


“먼저 우리가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조선 사람들은 씻지 않습니다.
조선 사람들은 아무데서나 자고 먹고... 심지어는 화장실도 없지요.
저는 그들을 위해 제 물질과 심지어는 입고 있는 옷까지 베풀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조롱했습니다.
나의 가족을 괴롭혔습니다. 무식한 민족입니다!!!
그들은 절대 복음을 받아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땅은 망할 것입니다.
저는 조선을 증오합니다.”

여러분 저는 지금까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사역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권위의 도전했습니다.
제 사역 가운데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죄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내가 이 땅을 사랑한다. 그것 하나면 되지 않느냐,
 너는 무엇이 더 필요하느냐‘

무엇이 더 필요합니까? 여러분!!!”


선교사들의 회개가 이어지자 곧 성도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저는 조폐국에서 일하면서 사무책으로 4달러를 더 받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것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저의 가족이 굶고 있었기에, 그 사실을 감추는 것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용서하여주옵소서, 용서하여주옵소서...“


“주님, 저는 저 남자와 1년간 동거하였습니다.
 제 마음대로 제가 내키는 대로 살았습니다.
 제 삶이 당신의 것인지 몰랐습니다.
 주님... 주님...“


“나는 매번 선교사들을 속여 왔습니다.
 내 집과 재산은 모두 선교사들을 속여서 얻은 것입니다.
 정직하지 못한 재산을 모두 돌려드리겠습니다.“


성령의 바람은 곧 원산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하디 선교사는 안식년 전까지 평양, 개성, 강원도, 원산, 서울 등에서 뜨겁게 부흥을 구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에는 해결되지 않는 슬픔이 있었다.
그것은 두 딸의 죽음이었다.
한국에서 낳았으나 단 하루 만에 양화진에 묻힌 큰 딸 메리...
그리고 7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작은 딸 마가렛

하디 선교사의 헌신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는 것이었다.
두 딸의 부르신 하나님께 그는 모든 것을 순종하였다.

부흥을 구하는 목소리는 점점 거세져 선교사들뿐만 아니라 평양의 수백 명의 기독교인들까지 합세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매일 1시간씩 성령을 역사를 간구하는 기도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제 평양입니다!
 평양에서 구정집회를 준비합시다.
 전 교회가 이것을 위해 기도합시다.
 ‘하나님 호렙산에서 모세에게 보이셨던 불처럼 임하여주옵소서!
  당신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원산 부흥운동, 평양 대부흥운동
백만인 고령 운동의 시작은 작은 기도에서부터였다.
하디 선교사는 이 모든 부흥 운동의 한 가운데에서 기도하는 자로 헌신하였다.
그의 모든 삶의 제목은 오직 ‘성령의 임재, 부흥’이었다.

하디는 1935년 45년에 걸친 한국 선교사 생활을 마치고 정년퇴직한 뒤 미국 미시건주 렌싱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919년 85세의 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하디 선교사의 눈물과 두 딸을 품은 조선은 이제 선교사를 보내는 나라로 택하여주셨다.
그것은 100년 전, 조선에 새긴 하디 선교사의 사랑과 눈물 흘린 기도의 열매일 것이다.


  * 출처 : CGNTV ‘1907 믿음의 사람들에서’ 발췌

 

 

 

 

 

 

 

 

 

 

 

 

= 짧은 글 긴 생각 =


  꼭 들려주고 싶은 6가지 좋은 말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힘을 내세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힘이 나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해보도록 하세요.
그러면 당신도 힘을 얻게 될 테니까요.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용기를 잃지 마세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용기가 생겨나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속삭이세요.
그러면 당신도 용기를 얻게 될 테니까요.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조건 없이
‘용서합니다.’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감격하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들려주세요.
그러면 당신도 용서를 받게 될 테니까요.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감사합니다.’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 때
정말 따사롭고 푸근해 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또렷하게 해 보세요.
그러면 당신도 감사를 받게 될 테니까요.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아름다워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따사롭고 환해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소곤거리세요.
그러면 당신도 아름다워지게 될 테니까요.


살면서 우리가 해야 할 말은
‘사랑해요.’라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을 때 정말 사랑이 깊어지거든요.
오늘 이 말을 꼭 하셔야 해요.
그러면 당신도 사랑을 받게 될 테니까요.


  * 출처 : 네이버 속 좋은 글 중에서 발췌

 

 

 

 

 

 

 

 

 

= 사랑하기에 아름다운 이야기 =


  아내와 함께라면


미국 디트로이트 시의 전등 회사에 근무하고 있는 젊은 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하지만 매우 성실했습니다.
하루에 열 시간씩 일하고서도 집에 돌아와서 낡은 창고에 틀어박혀 밤을 새우곤 했습니다.
집 뒤뜰의 낡고 작은 창고가 바로 그의 연구실이었습니다.
그 창고는 온갖 종류의 부품과 기름 냄새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농부인 그의 아버지는 그를 몹시 못마땅하게 여겨 몇 번이나 그 창고를 헐어버리겠다며 야단을 쳤습니다.
동네 사람들마저 젊은 기사가 쓸데없는 일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망하지 않고 계속 밤을 새우며 일을 했습니다.
자신을 믿어주는 단 한 사람, 아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내는 남편이 하는 일을 믿고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꼭 성공할 거예요, 난 믿어요. 언젠가는 당신의 꿈을 이룰 거예요.”

아내는 밤늦도록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남편 곁에서 말없이 등불을 비춰주었고, 추운 겨울밤에는 꽁꽁 얼어붙은 손을 호호 불어가며 그의 일을 도왔습니다.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마을 사람들은 생전 처음 듣는 시끄러운 엔진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젊은 기사는 무엇인가를 타고 거리를 달렸습니다.
그것은 말이 끌지 않는데도 네 바퀴만으로 굴러가는 수레였습니다.
마침내 그의 집념이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이 젊은이가 바로 자동차 왕 ‘헨리 포드’입니다.
그가 발명한 것은 자동차이구요.

그는 어느 날 기자들로부터
“다시 태어나면 무엇이 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내 아내와 함께한다면 무엇이든 상관없소!”


  * 출처 : 행복 한 바구니에서 발췌

 

 

 

 

 

 

 

 

 

 

 


= 건강 코너 =


  생활 속 인플루엔자 예방수칙


1. 인플루엔자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급성 호흡기질환으로서 주로 기온이 낮은 계절인 10월 ~ 4월     에 감염자가 증가하여 계절 인플루엔자라 부르기도 한다.


2. 증상
 고열, 두통, 근육통과 같은 전신 증상을 동반한 기침, 인후통 등의 호흡기계 증상


3. 생활 속의 예방수칙
 1) 예방접종 권장대상자는 예방접종을 받습니다.
    ※ 65세 이상 어르신, 만성질환자, 생후 6~59개월 소아, 임산부, 50~64세 연령 등
 2) 비누를 사용하여 자주 손을 씻고 개인 위생수칙을 잘 지킵니다.
 3) 기침, 재채기 할 때는 손수건, 휴지, 옷깃으로 입을 가리는 기침 예절을 지킵니다.
 4) 발열과 호흡기 증상(기침, 목 아픔, 콧물 등)이 있는 경우 마스크를 착용합니다.
 5) 인플루엔자가 유행할 때에는 가급적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의 방문을 피합니다.
 6) 인플루엔자 의심 증상이 있는 경우 즉시 의사의 진료를 받습니다.

4. 감기 바이러스 전파 경로
   1) 손에 의한 감염
   2) 기침으로 인한 감염
   3) 호흡을 통한 감염

  * 출처 : 질병관리본부
= 말씀 테마 =
 

 두려움의 고리를 끊는 방법!!
 죽을 때까지 두려움의 연속으로 살아갈 것인가?

  이찬수 목사


내가 신학교 다니던 시절에 내 가슴을 벅차게 했던 성경구절이 있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

나에게는 이 말씀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우리가 예수님이 하시던 일을 행할 수 있다니,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다니 말이다.
그런데 그 다음 구절에서 어떤 전제가 주어지는가?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

기도할 때 이런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께서는 놀랍도록 부요하신데 우리는 영적으로 왜 이렇게 가난한가?
아버지께서 내게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신 것 같은 놀라운 하늘 창고의 열쇠를 맡기기 원하시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빈곤한가?

기도의 열쇠를 소유하기 바란다.
그리하여 예수님이 하신 것 같은,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행하는 놀라운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자주 부르는 찬송가 중에 이런 찬송이 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가사 첫 줄에서 “딴 근심이 없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근심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광풍이 안 불고 늘 봄 날씨같이 평온해서 딴 근심이 없는 게 아니다.
두려움이 있고 근심이 있다.
그런데 왜 근심이 없다고 말하나?
십자가 밑에 나아가 그 짐을 풀어버려서 이제는 근심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그러면 십자가 밑에서 짐을 푸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인가? 2절 가사를 보자.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나는 우리 인생이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죽을 때까지 두려움의 연속으로 살아가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전날의 두려움이 변하여 오늘의 두려움이 되고, 오전의 두려움이 변하여 오후의 두려움이 되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 두려움의 고리를 끊기 위해 기도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노라고 노래하는 인생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날마다 기도하면서 살든지, 아니면 날마다 두려워하면서 살든지 말이다.

긍휼을 베푸시는 주님 앞에 기도하자.
나라를 위해, 교회를 위해, 이웃을 위해 기도하자.
기도는 사랑을 표현하는 최고의 방법이다.


또 자녀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자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영혼을 위한 중보기도이다.
영이 살아나지 않는데 공부 잘하는 것이 무슨 대수고, 좋은 것 먹이고 좋은 옷 입히는 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은 분명 놀라운 기적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기적은 아무것도 없는 다윗이 골리앗에게 덤볐다는 것이다.
우리 자녀들도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은가?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조건이 별로 안 좋아도 골리앗을 향해 도전했던 다윗처럼 세상을 향해 저돌적으로 나아가 도전하는 자녀로 키우고 싶지 않은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그런 놀라운 일을 이루어주신다.

에베소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랑을 중보기도로 승화시켰던 사도 바울처럼 우리도 이웃을 향한 사랑을, 성도를 향한 사랑을, 자녀를 향한 사랑을 주님 앞에 드리는 기도에 담아 올려드리자.


 * 출처 : 이찬수 <아이덴티티 : 예수 안에 있는 자> 도서출판 규장

 

 

 

 

 

 

 

 

= 아이들의 눈으로 보는 세상 =


엄마는 필요 없어?

멀리 사는 언니가 오랜만에 놀러 왔다 돌아가려는 참이었다.
딸아이가 자기도 같이 가겠다며 떼를 쓰기에 내가 물었다.
“정말 이모 따라갈 거야? 엄마는 필요 없어?”
딸은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필요 없는 게 아니지.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지 필요한 게 아니야.”


수학 공부

다섯 살 하영이에게는 오빠가 셋 있다.
셋째 오빠가 수학 공부를 할 때 였다.
엄마가 물었다.
“사탕이 다섯 개 있어. 큰형이 한 개 먹고, 작은형이 한 개 먹고 네가 한 개 먹었어.
 그러면 몇 개가 남지?“
옆에서 그림책을 보던 하영이가 대신 대답했다.
“엄마, 나는 사탕 한 개도 못 먹었어요!!”


아파 보이길래

지난봄 손자가 유치원에서 고추 모종을 받아 왔다.
베란다에 놓고 정성껏 키웠다.
어느 날 아들이 고추 하나에 반창고가 붙은 걸 발견했다.
의아해하는 아들에게 손자가 말했단다.
“고추가 빨갛게 피가 나서 아파 보이길래 붙여 줬어요.”
고추가 끝에서부터 빨개지는 걸 모르고 다친 줄 안 손자를 상상하니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


번호표 뽑으세요

친척들이 모였을 때다.
네 살짜리 조카 재롱을 보다 한 어른이 물었다.
“지우 이사한 집에 우리 다 같이 가도 돼?”
고민하던 조카가 말했다.
“한꺼번에 여러 명이 들어오면 집이 무너져요. 번호표 뽑아서 순서대로 들어와요.”
그 말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은행 다니는 동생 딸다웠다


  * 출처 : 월간 도서 <좋은 생각> 이오아이 발췌

 

 

 

 

 

 

 

 

 

 


= 이럴 땐 이런 말씀 =


  무조건 감사하게 되는 말씀 8

  크리스천에게 ‘감사’는 어떤 의미일까요?


<평생감사>의 전광 목사는 감사의 크기가 행복의 크기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진정한 행복은 어쩌면 감사하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닐까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감사에 관한 말씀을 암송하며 오늘도 감사를 연습합니다!


1.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시 50:23)

2.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시 100:5)

3.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기묘하심이라 (시 139:14)

4.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5)

5.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8)

6. 여호와께 감사하라 (대상 16:34)

7.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8.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시 33:2)

 
* 출처 : 갓피플 포스팅
=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김동호 목사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에게 자기들의 조상은 그리심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제사를 드리는데 “과연 어디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옳은가”를 질문하였다.

그때 예수님은 “어디서 제사를 드리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제사를 드리는지가 중요하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하며 하나님은 그렇게 예배 드리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셨다.


“주님만 예배하게 하소서!”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배’이다.

교육도 중요하고 선교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이다.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서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있을 수 없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살고, 예배가 살아야 교인인 우리가 산다.

예배가 습관화되고 형식화되면 교회도 죽고 우리도 죽는다.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그리하여 은혜 충만 성령 충만한 예배에 우리의 생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절대로 과언이 아니다.


동안교회에 처음 부임했을 때 여러 부서의 봉사자들이 다 열심히 봉사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열성적인 사람들 중의 하나가 예배부원이었다.
그때는 교회당이 좁아서 주일 낮 예배를 다섯 번 드릴 때였는데 1부부터 5부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안내와 봉사를 하는 것이었다.
목사보다 더 일찍 나와서 예배 준비를 하고 목사보다 더 늦게까지 남아서 뒷정리를 하곤 했다.
그 열심과 헌신은 다른 교회에서 쉽게 찾아보기가 어려울 만큼 대단했다.

그런데 나중에 매우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다.
봉사자들이 안내만 할 뿐 예배를 드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다른 교인들이 예배를 잘 드릴 수 있게 자기들은 희생을 한다는 것이었다.

삼일기도회 시간에 기회가 있어서 그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봉사도 중요하지만 예배가 더 중요하며 예배는 절대로 희생할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했고, 예배를 드리지 않고 봉사만 열심히 하다 보면 나중에 교회에 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예배 없이 봉사하면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교회를 섬기지 않고 자기의 마음과 생각으로 교회를 섬길 수밖에 없는데, 그럴수록 문제가 발생하고 골치 아픈 일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예배는 건성으로 드리고 당회와 제직회, 노회와 총회 같은 회의를 열심히 하고 봉사를 한답시고 열심을 내다가 결국은 교회의 주도권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일이 한국교회의 가장 보편적이고 골치 아픈 문제이기 때문이다.

회의도 중요하고 봉사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예배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회의 잘하는 사람도 찾으시고 봉사 잘하는 사람도 찾으시지만 그보다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예수를 참으로 잘 믿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면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하고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느 교인 하나가 감사헌금을 하면서 감사헌금 봉투에 “수요예배를 통하여 예배의 기쁨을 회복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록했다.
그 감사 내용을 읽으면서 가장 복되고 귀한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예배에 기쁨이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아는가? 여러분도 그 기쁨을 느끼는가?

예배에는 기쁨, 은혜, 감동, 축복이 있다.
은혜 충만한 예배, 성령 충만한 예배, 기쁨과 감격이 살아 있는 예배가 있다.
예배를 사모해야 한다.
따라서 예배를 건성으로 드리지 않고 영과 진리로 정성껏 드려야만 한다.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들이 될 수 있기를 권한다.

<신앙 기본으로 돌아가자>

유명한 교부이자 설교가 크리소스톰은 예배 인도자가 없어서 고민하는 한 시골 교회에, 그래도 제일 낫다는 사람 하나를 뽑아 인도자로 세웠다.
그는 배운 것 없는 농부였다. 시간이 제법 흐른 뒤 크리소스톰은 그 교회를 방문했다.
맨 뒷자리에서 조용히 예배를 드리던 그는 그 농부, 아니 예배 인도자가 얼마나 은혜롭게 예배를 이끌고 감동적으로 설교를 하던지 너무 놀라서 예배 후 그에게 물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은혜롭게 예배를 인도할 수 있단 말이오?”
이 질문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농부가 되물었다.
“아니 그러면 은혜롭지 않게도 예배를 드릴 수 있단 말입니까?”


  * 출처 : 김동호 <크리스천 스타트> 도서출판 규장

 

 

 

 

 

= 하나님,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


  주님께 당신의 마음을 먼저 올려드리라.


어떤 왕에게 1만 달란트를 빚진 자가 있었다.
 왕은 그에게 “가진 것을 모두 팔아서 갚으라”라고 명령했다.
심한 처사가 아니다. 공의와 공평의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빌린 것이 있다면 갚아야 마땅했다.

“참아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갚을 능력이 없었다.
놀랍게도 왕은 그를 불쌍히 여겨 놓아주었고 자그마치 1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해주었다.
놀라운 은혜였다.
그는 은혜 받은 사람처럼 살아야 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나 멱살을 잡으며 말했다.

“내게 빚진 것을 갚아라.”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며 말했다.

“참아주십시오. 다 갚겠습니다.”

이는 그가 왕에게 대답한 말과 같았다.
하지만 동일한 상황에서 그는 동료를 옥에 가두었다.
그러자 왕이 그를 다시 불러서 말했다.

“이 악한 종아, 나는 네가 애원하기에 그 빚을 다 없애주었다.
 너도 내가 불쌍히 여긴 것처럼 네 동료를 불쌍히 여겼어야 할 것이 아니냐!”

그러고는 이 사람이 평생 다 갚지도 못할 빚을 다 갚을 때까지 가두어버렸다.

그가 왕에게 갚아야 할 돈은 1만 달란트였다.
1달란트는 6천 데나리온이고, 1데나리온은 장정의 하루 품삯이다.
그러니 하루 품삯을 10만 원으로 치고 1만 달란트를 현재 금액으로 환산하면, 10만 원에 6,000을 곱하고 다시 1만을 곱하면 된다.
보통 1달란트는 금 약 33킬로그램의 무게라고 한다.
그러니 1만 달란트는 금 330톤의 가치라고도 할 수 있다.

결국 한 개인뿐 아니라 가족과 친인척의 능력까지 다 합해도 갚을 수 없는 규모의 빚이다.
대기업이나 국가가 힘을 써도 갚지 못할 정도다.
이게 바로 내가 치러내야 할 죄의 무게이며 값이다.
이것을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용서해주신 것이다.

이 비유는 십자가의 은혜를 안다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은혜를 입었는지를 안다면 마땅히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함을 말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들을 때마다 동료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은 사람을 쉽게 정죄하곤 한다.

하지만 왕에게 탕감 받은 이가 동료에게 받아야 할 돈도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다.
100데나리온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장정 한 명이 100일 동안 일한 품삯과 같다.
하루 품삯을 10만 원으로 계산하면 1천만 원이나 되는 금액이다.
누가 1천만 원 앞에서 여유로울 수 있을까.

예수님의 이 비유는 결국 1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 받은 사실과 비교해야만 가능한 이야기다.
내가 얼마나 큰 죄악에서 구원받았는지를 알아야만 누군가를 용납할 수 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내게 행하신 일을 기억할 때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눅 18:27).

언젠가 딸 온유가 학교에서 돌아와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외국에서 선물 받은 소중한 팔찌를 장난꾸러기 남자아이가 끊어버리고는
“너를 죽여버리고 싶다. 죽여버릴 거야”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온유는 책상에 엎드려 한참을 울었다고 했다.
막 초등학생이 된 남자아이가 정확한 의미를 담아서 말했을 리는 없지만 온유의 입장에서는 속상할 만했다.
나는 아이가 진정이 되었을 때 품에 안고 말했다.

“우리가 함께 암송했던 말씀들 기억하지?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한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를 용서해주세요.)
 라는 말씀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 같은 날 순종해야 하는 말씀이야.

그런데 이건 당장 내일 학교에 가서 그 아이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내라는 뜻이 아니야.
다만 네가 속상해서 그 친구에게 똑같이 해주고 싶은 마음이나 힘든 마음을 하나님께 먼저 올려드리는 거야.


“ 주님 너무 아팠어요.
  미워함을 회개하며, 주님께 다 올려 드립니다.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 부으소서.
  주님 뜻대로 되게 하시며, 저의 마음도 고쳐주소서“


‘하나님,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
 이 마음을 내가 해결하는 게 아니라 주님께 먼저 올려드립니다’라고 말이야.
 아빠는 이렇게 하는 것이 용서의 시작이라고 생각해.”


용서한다는 건 그에 대한 미래의 결과를 시작점에 가지고 온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내가 자존자로서 해결하려는 의지를 내려놓고 주님께 의존자로서 반응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용서가 이와 같다면 우리의 여러 문제도 비슷하게 해석할 수 있다.
수많은 문제를 앞에 두고 먼저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말씀 위에 삶을 올려놓는 시작이기도 하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원수를 사랑하는 건 고사하고 가장 가까운 가족을 사랑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요 14:15, 새번역


사랑이 답이다.
만일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한다’라는 말이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만든다면, 먼저 주님을 사랑해야만 한다.
그러면 좁은 길이든 넓은 길이든, 길 자체를 보는 대신 주님의 얼굴을 보게 된다.
길을 걷는 게 목적이 아니라 주님과 동행하는 게 목적이기 때문이다.


  * 출처 : 이요셉 <오늘, 믿음으로 산다는 것> 도서출판 규장

 

 

 

 

 

 

 

 

 

 

= 내가 용서할 수 있을까? =


 용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응답받는 기도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용서이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풀어지는 능력에 관해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다(막11장).
예수님은 그들이 기도로 산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막11:25)고 덧붙이셨다.
이는 매우 포괄적인 놀라운 명령이다.
이 명령에는 예외가 없다.
우리의 기도가 산을 움직이는 결과를 낳기를 바란다면 주변 사람들이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든지 그 모든 것들을 용서해야 한다.

용서하지 않고 살 때 우리는 수축되고 폐쇄된다.
우리의 근육은 오그라들고 턱은 닫힌다.
우리 몸의 모든 기능은 유연성을 잃고, 부드럽게 작동하기 위해 균형이 필요해진다.
영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진다.
용서하지 않을 때 우리는 수축하고 경직되어 방어 태세로 주먹을 쳐든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를 통해 밖으로 흘러가지 못하게 효과적으로 막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분 안에 거하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리라고 설명하셨다(요 15:4,9).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다면 어떤 분노나 비통함이나 비판적인 마음도 우리 안에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셨기 때문에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보다 더 많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에게 나타내라고 명하시는 사랑은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우리 생명과 권리와 모든 것을 내어놓는(요 15:12,13) 바로 그런 사랑이다.
이것은 불의를 용서로, 저주를 축복으로, 거절을 받아들임으로 갚아주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
어떤 고통을 당하더라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분은 예수님 한 분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를 악물고서 이웃을 사랑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나는 연약하다.
그러나 강하신 그분, 모든 사람에게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베푸실 수 있는 그분, 사랑을 이름으로 갖고 계신 그분이 내 안에 살고 계시다.


요한일서 4장 12절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고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을 증명하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고 말한다.
우리가 그런 사랑을 표현하는 것은 오직 우리를 통해 살고 계신 예수님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을 사랑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느낄 때, 나는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발버둥치고 안간힘쓰며 “하나님, 그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꼭 그렇게 할 거예요.
좀 더 열심히 노력할 겁니다!”라고 약속하지 않는다.
나는 내 안에 사랑할 힘이 있는 것처럼 가장하거나 주장하는 대신 정직하게 아뢴다.

“주님, 그 사람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제 안에 살고 계시니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제 마음에 가득 퍼져 있는 것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약하지만 주님께서 강하시니 감사합니다. 제 부족함을 주님의 풍성한 공급으로 바꿔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게 필요한 모든 것이 되어주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하면서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 눈을 돌리면 사랑과 용서가 풀려나와 마침내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예수님은 그분의 멍에는 쉽고 짐은 가볍다고 약속하셨다(마 11:30).

하나님은 시편에서 우리와 하나님의 언약 관계를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주셨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

이 장면을 그릴 수 있겠는가? 새끼 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둥지를 생각해보라.
그 둥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통 크게 벌리고 가득 차기를 기다리는 새끼들의 입만 보인다.
새끼 새들이 배고파할 때, 어미 새는 새끼들을 둥지 밖으로 내보내 스스로 먹이를 찾게 하지 않는다.
자칫 둥지에서 떨어져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일은 내가 할 테니 입만 크게 벌려! 얼른 날아가서 벌레를 잡아올게.
너희들은 여기서 쉬면서 입을 크게 벌리고 내가 주는 것을 받아먹으면 돼!”라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이다.
우리는 필요한 것을 스스로 조달하려고 서툰 날개를 푸드덕거리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께서 강한 분, 공급하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입을 크게 벌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들을 받아먹는 것이다.
용서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아들이면 우리에게서 사랑과 용서가 흘러나갈 것이다.

요한일서 4장 18-21절은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으므로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이 구절을 척도로 삼아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얼마나 철저하게 거하는지 측정한다.
만일 내가 사람들이 모여 있는 방에 두려움을 갖고 들어간다면 그것은 내 삶이 초점을 잃었음을 나타낸다.
만일 내가 어떤 상황을 두려움으로 맞는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거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나를 나 자신 너머로, 나의 염려와 부족함 너머로 높이 들어올린다.
사랑은 예수님과 다른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나의 가장 깊은 갈망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되게 한다.
“미움을 회개하며,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 구하기”


분노는 속박하고 용서는 풀어준다.
용서는 용서하는 사람과 용서받는 사람 둘 다를 자유롭게 풀어준다.
용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풀어내어 그 능력이 용서에 관계된 쌍방과 상황 안에서 역사하게 하며, 그럼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나는 오래 전 내 아버지를 용서했을 때, 사랑과 용서의 능력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내 부모님을 주님의 양육과 훈계 안으로 모셔오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분들께 가르쳐드려야 하는 진리가 많았지만 특히 아버지는 내 말을 더 강하게 거부하셨다.
어느 여름날,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우리 부부는 부모님이 계신 캠프를 방문하여 풍성하고 값진 지혜를 나눠드리기를 정말로 갈망하며 열변을 토했지만 부모님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분노에 가득 찬 말들이 오갔고 결국 그 방문의 남은 시간은 냉전과도 같았다.

나는 차를 몰고 돌아오면서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부모님을 가르치려던 나의 시도가 합당치 못한 것이었음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나는 목사였지만 내 부모님의 목자로 부름 받지는 않았다.
플로리다에 살고 있는 부모님에게는 그들의 교사로 안수를 받은 유능한 목회자가 있었고 나는 뉴욕에 있는 내 양 떼들의 목자였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키우지 않으려고 매우 조심했다.
다행히 아버지는 나와 2천5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살고 계셨고 또 한동안은 아버지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아버지도 나와 같은 느낌일 것 같았다.
그 후 4개월 동안 우리는 아무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 해 가을, 우리 집에서 사람들과 성경공부를 할 때였다.
예배를 드린 뒤, 성령께서 각자에게 무엇이라 말씀하시는지 듣기 위해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내 마음에 갑자기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네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구나!

나는 즉각 “미워하지도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사랑하지도 않잖니?
사랑은 활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손을 내미는 거야!
너는 그저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지. 그건 사랑이 아니야.

나는 그 말씀이 진리임을 즉각 깨달았고, 마땅히 부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것을 회개했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했고, 그들은 나와 아버지의 관계가 회복되도록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부모님께 즉각 전화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틀 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부모님의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이것도 놀라웠지만 그 내용은 훨씬 더 놀라웠다.
사실 우리 부부의 명의로 되어 있던 그 연립주택은 건축비용 일부를 아버지에게 빌린 것이었다.
당시에는 이자율이 그렇게 비싸지 않아 아버지께 돈을 빌린 것인데 몇 해 후에 이자율이 급상승하면서 아버지에게 지불해야 하는 이자가 상당한 부담이 되기 시작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에게 그리스도인 ‘형제’에게 이자를 받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깨달음을 주셨다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는 앞으로 우리 부부에게 이자를 부과하지 않을 뿐 아니라 그때까지 우리에게 받았던 이자의 액수를 총합하여 대출금 원금에서 제하겠다고 하셨다.

정말로 믿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말 한 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용서의 능력이 무려 2천5백 킬로나 떨어져 있던 내 아버지에게 당도하여 그의 마음을 어루만졌던 것이다.
그것은 내 아버지를 속박에서 풀어 자식을 향한 사랑을 재확인하게 했다.
이후 아버지와 나는 관계를 회복하여 오늘까지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용서의 능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분노와 쓴 뿌리가 없는 순전한 마음이 기도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통로가 된다.


  * 출처 : 마크&패티 버클러 <하나님과 대화하기> 도서출판 규장

 

 

 

 

 

 

 

 

 

 

 

 

 


= 갓 포스팅 =


  하나님 말씀하세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 창 22:1

여기서 사용된 ‘시험’은 유혹 또는 미혹이 아니라 훈련 또는 연단을 의미한다.
유혹이나 미혹은 하나님이 아닌 사단이 하는 시험으로서 그 목적은 우리를 쓰러뜨리고 멸망시키고자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시험인 훈련이나 연단은 우리를 더 온전한 사람으로 세우기 위한 섭리를 뜻한다.

놀라운 비밀은 사단의 유혹과 하나님의 연단이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의 목적, 즉 데스티니와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다.

사단이 왜 믿는 자들까지도 끝까지 미혹하여 쓰러뜨리려고 하는가?
이미 구원받아 천국 가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시험하는가? 이유는 하나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위한 것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훈련과 연단의 시험을 행하시는 이유는 하나님의 데스티니를 이룰 수 있는 온전히 사람으로 준비시키기 위해서다.
동일하게 시험이라고 표현하지만 사단은 우리를 쓰러뜨려서 데스티니를 틀어버리고자 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우리를 세워 데스티니를 온전히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다.

이 시험을 대하는 지혜의 방법도 다르다. 이것을 꼭 명심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사단의 시험은 피하고 하나님의 시험은 믿음으로 감당해야 한다. 그래야만 데스티니를 이룰 수 있는 온전한 사람으로 설 수 있다.

이것을 꼭 반대로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러면 인생 자체가 꼬이고 힘들어진다.
쓰러뜨리려고 하는 시험을 죄다 통과하느라 엄청 얻어맞아 혼수상태로 비틀거리며 나온 다음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하면 참으로 안타깝고 답답하다.
반대로 온전히 세우려는 하나님의 시험을 다 피해버린다면 그 사람의 영적 수준은 항상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뿐 발전이 없고 오히려 침륜에 빠지게 된다. 그러므로 제대로 해야 한다.


“시험이 올 때는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마귀의 계략은 무너지고 예수님 뜻대로 되기를!
 계속 기도!“
 

그러나 여기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다.
사단으로부터 오는 미혹과 유혹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허락하시고 감당하지 못할 미혹과 유혹은 피할 길을 주신다(고전 10:13).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한 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연단하고 훈련하시고자 하는 것으로, 이 시험을 통과한 다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하여 그의 데스티니가 이루어질 것을 확정하고 선포하신다.
시험을 당하는 그 당시에는 시험이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시험 후에는 영적인 돌파와 실체가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시험을 통과할 때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그 너머 실제가 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인용한 것처럼 경기하는 자가 면류관 얻을 것을 바라보고 달리는 것과 같다.
물론 결코 쉬운 시험은 아니다.
시험의 정도에 상관없이 모든 시험은 사실 힘들고 어렵다.
아무리 하나님의 연단과 훈련을 위한 시험이라도 시험 자체를 즐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건강한 모습이 아니다.
고통을 느끼면서 즐긴다니 그것이 어떻게 정상인가?
그 너머 시험 이후에 있을 상급과 열매를 바라봄으로 이겨내는 것이다.

다음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는 내용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창 22:2

먼저 우리는 이 하나님의 시험을 당시 시대적 배경에서 이해해야 한다.
당시 가나안 족속들은 자신의 신들에게 제사하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 제사를 빈번이 행해왔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첫째,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볼 때 이 요청이 너무 황당하고 말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당시 그런 제사가 주변에서 빈번히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당혹스러웠던 것은 인신 제사를 드리는 그 자체가 아니다(물론 이것도 충분히 당혹스러울 수 있다).
자신의 아들을 언약의 자녀로 삼아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하신 하나님께서 동시에 그 아들을 바치라고 하셨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우리 시대의 관점으로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그것도 자녀를 바치라고 하시는지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그 당시의 문화나 종교적 배경에서 이런 요청은 전반적으로 수용되는 개념이었다.
그러면 하나님도 인신 제사를 원하시는가?
정말 사람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미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하라고 하신 것은 정말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를 훈련하고자 시험하셨다는 것을 이미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또한 이 요청은 하나님이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일을 경멸하신다는 율법의 가르침을 아브라함이 미처 이해하기 이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살고 있던 당시 가나안 사람들 가운데서는 자연스럽게 빈번히 일어난다는 문화적 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는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실까? 매우 간단하다.
“네 아들을 내려놓아라.”
“네 딸을 내려놓아라.”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뜻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하나님 앞에 그 어떤 것도 두지 말라는 의미이며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드리라는 요청일 수도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녀보다 더 소중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말씀은 그 말씀이 기록된 시대적 배경에서 먼저 해석되어야 한다.
그다음 이것을 현대적 상황에서 재해석해야 엉뚱한 질문이나 결론에 도달하지 않게 된다.

말씀을 좇아 브엘세바로부터 삼 일 길을 걸어서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이 보이는 지점에 도착한다.
지난 삼 일 간 아브라함이 아들과 무슨 말을 나누었을까?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기까지 앞으로 담당할 십자가를 위해 몸부림치는 당신의 아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맞다. 이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은 많은 경우 침묵하신다.
이유는 말을 할 수 없거나 말을 해도 이해할 수 없고 그리고 말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때는 신뢰함으로 묵묵히 순종하며 나아가야 한다.

25살 때 주님을 깊이 만나 주님께 올인 하고 말씀하신 대로 좇아가겠다고 살아온 지 25년이 되었는데, 돌아보면 가장 결정적인 순간 주님은 당신의 의중을 말씀해주신 다음에도 내가 그 말씀대로 발걸음을 떼기까지 오랫동안 침묵하며 기다리셨다.
나는 이것을 기억한다.


이 결정적인 순간은 참으로 어렵고 때때로 외로울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믿음으로 말씀을 좇아 행할 때 그 말씀이 내 삶에 실제가 되고, 동시에 하나님이 앞서 준비하시고, 가장 완전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영적 원칙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리고 나는 순종한다.
그러면 결국 그 말씀이 실제가 되는 삶으로 들어가게 된다.


  * 출처 : 윤성철 <유브라데 강을 넘어> 도서출판 규장

 

 

 

 

 

 

 

 

 

 

 

 

 

 

  = 독자안내 =

  일상생활에서 재미있었던 사연, 혹은 감동적이었던 실화를 적어 보내주십시오. 추첨을 통하여 소정의 상품과 함께 2019년 점자새빛(여름호) 독자코너에 사연을 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응모는 반드시 우편접수를 원칙으로 하며, 아래 기재된 주소로 점자 혹은 묵자로 작성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

문의: 02-533-9820
주소: 서울시 서초구 방배중앙로 97 - 1 점자새빛 출판부 우편번호 06570


    = 모집안내 =

2019 비영리민간단체 지원사업 참여자 및 자원봉사자 모집
1. 분야 : 악기교육(트럼본,색소폰,단소),라틴댄스,등산
2. 기간 : 2019년 4월 12월 상시모집
3. 대상 : 프로그램의 참여를 희망하시는 시각장애인 및 자원봉사자 
4. 신청 : 02) 533-9863  주관 : 사단법인 새빛


    = 입소안내 =

 1. 새빛맹인재활원 (서울 서초구소재 시각장애인 생활시설)
무의탁 시각장애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활보호와 재활교육 과정을 도와주고 있는 사랑의 공동체로써, 재활의 꿈을 만들어가며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디딤돌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2. 새빛요한의 집 (경기도 용인소재 시각장애인 양로시설)
 ‘새빛요한의 집’은 사회에서 소외된 연로한 시각장애인에게 삶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낮은 곳에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보호시설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나 이웃에 이러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계시면 지금 곧 전화 주십시오.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상담전화 : 02-533-9863,4
지참 서류 : 장애인등록증 1통, 건강 진단서(보건소) 1통, 주민등록등본 1통, 가족관계확인서 1통, 반명함판 사진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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