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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여름호

게시물 정보

작성자 새빛US 작성일14-08-14 11:14 조회4,995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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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자 새빛
(시각장애인을 위한 신앙과 교양지)
2014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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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1년 11월 3일
등록 번호: 서초 바00097
제55권 2호 통권340호
발행일: 2014년 7월 10일
주소: 서울 서초구 방배중앙로 97-1
전화: 02-533-9820
발행겸 인쇄인: 안요한
인쇄처: 낮은데로 임하소서 새빛복지재단 점자새빛 출판부
 
 
= 차 례 =
 
1. 이호의 시: 조락의 내 나이를 사랑한다(박금천)
2. 감사의 기적, 하나: 화니 크로스비의 감사
3. 이호의 말씀: 행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박준배)
4. 이호의 인물: 나를 키운 건‘긍정의 힘’이었다
5. 생각하는 오솔길: 캘시 박사의 용기
6. 건강 코너: 역사 속 건강이야기 세종대왕의 다이어트 시크릿 ‘식치’
7. 짧은 글 긴 생각: 사과 좀 깎아 주세요
8. 인물 기획 취재: 장애인의 날 ‘서초야 놀자’ 모범장애인상 수상자 박종근 장로를 만나다.
9. 감사의 기적, 둘: 감사 십계명(스펄전 목사)
10. 함께하는 사회: 시회적인 편견을 극복하고 승리하시라 (김순자)
11. 감사의 기적, 셋: 제일 작은 빵
12. 주제가 있는 글: 풀과 꽃(김양규)
13. 다시 읽는 명작: 어떻게 작은 악마는 빵 조각을 보상하였는가?(툴스토이)
14. 생명의 양식: 바람과 풍랑을 바라봅니까?
 
 
 
 
 
 
 
 
1. 이호의 시
 
조락의 내 나이를 사랑한다
 
- 박금천 -
 
한겨울 찬바람에
따듯한 햇빛
삭막한 대지에
펄펄 날리는 눈송이를 사랑한다
 
봄바람에 선잠을 깨고
눈을 뜨는 선잠을 깨고
눈을 뜨는 꽃망울 미소
뜨거운 대지에
쏟아지는 소낙비를 사랑한다
 
낟알이 익어가는 들녘
숨가쁘게 몰려오는 후끈한 내음
가을볕에 취한 듯
얼굴 붉히는 감나무를 좋아한다
 
낙엽이 쌓인 나목의 산
온 가슴을 풀어헤친 겨울산도
할머니의 품속같이 좋아한다
 
피고 지는 삶의 여정에서
쉬어 가는 길목
조락의 내 나이를 사랑한다.
 
* 박금천 시인은 ‘문학대학’ 신인상 등단, 창시문학회 부회장, 사회복지법인 새빛복지재단 고문 김상원(전 대법관)의 부인입니다.
 
 
2. 감사의 기적, 하나
 
화니 크로스비의 감사
 
화니 크로스비는 시각장애인으로서 9천여 편에 달하는 찬송시를 쓴 사람입니다. 화니는 찬송시 작사가뿐만 아니라 시인이자 음악가로서도 기타와 하프, 오르간을 잘 연주하였습니다.
 
화니는 미국 뉴욕의 경건한 청교도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태어난 지 6주 만에 눈병을 잃게 되었는데, 마을에 의사가 없어서 다급한 나머지 무면허 의사에게 치료를 받는 바람에 각막에 심한 손상을 입고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화니는 평생 동안 그 의사를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의사 선생님을 만나면, 이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귀한 일을 했다고 감사의 말을 전하겠어요.” 라고 했습니다. 화니는 자신의 시력을 잃은 것이 축복이자 섭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화니의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그녀의 눈이 되어 주었습니다. 외할머니는 순수하고 경건한 신앙인으로서, 주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린 화니와 할머니는 자주 한적한 교외를 거닐었습니다. 할머니는 화니가 볼 수는 없지만 만지고, 냄새 맡고, 맛을 보면서 경험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정상적인 사람들과 똑같이 볼 수는 없지만, 환상을 통해 멋진 자연을 꿈꿀 수 있었습니다. 화니는 대중이 함께 부를 수 있는 찬송시를 쓰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녀는 시를 쓸 수 있도록 놀라운 재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일을 통하여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화니를 찾아와, 주님께서 그녀에게 많은 은사들을 주셨는데, 왜 시력은 주시지 않으셨는지 궁금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화니가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저는 하나님께서 제 눈을 뜨게 해주시기를 원치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제가 처음 보게 될 분이 바로 주님이시길 원하거든요.”
또 어떤 성도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처한 상황을 볼 때 감사하기가 힘들 것 같은데, 무엇이 늘 그렇게 감사로 가득 차게 하나요?”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감사의 조건들은 아주 많습니다. 그렇지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감사할 수 있답니다.”
 
* 작은 감사 큰 행복 (전광 저) 발췌
 
 
3. 이호의 말씀
 
행복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 박준배/새빛맹인선교회 이사 -
 
1980년대에 지체 장애인들이 한라산을 등반하였다. 그들은 등산 장비들을 갖추거나 배낭도 메지 않았고 등산하기에 적당한 차림새도 아니었다. 허리에 밧줄을 묶고 팔꿈치와 무릎에 두툼한 보호대를 하고 기어서 올라가야 되었다. 오직 땅만 바라보면서….
 
그런데 한라산 등반 소감을 묻는 사람들에게 한라산이 그렇게 아름다울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올라가는 동안 우거진 숲 사이를 올라가면서도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우거진 숲조차 볼 수 없었고 오직 땅밖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지만 산 위에 올라서 바라본 광경은 아름다웠고 그래서 행복했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였다.
 
인생이 행복을 느낀다는 것은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벗어난 사람만이 말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비극적인 삶을 살면서도 좌절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목표를 이룸으로써 행복해지거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데 고난을 겪더라도 극복하고 승리하면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많은 시간들을 가지면서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행복한 마음을 갖도록 해줄 수 있을까? 또는 어떻게 해야만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 적이 많이 있다. 그러나 정상인으로서 시각장애인을 이해한다는 사실도 어렵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신앙을 북돋아주려고 노력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요양원에서 장애인들이 화재로 20여명이 죽었는데 간호사 한 사람이 장애 노인들을 건져내려고 하다가 숨졌다는 뉴스를 들었다. 시각 장애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위협은 화재이다. 시각 장애인들이 화재를 당할 때에 무조건 위로만 올라가기 때문에 피해가 커지기 마련이다.
 
정치인들의 복지공약을 남발하고 있지만 양심회복 운동이나 도덕성회복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을 아직도 본 적이 없다. 우리의 이웃이며 자신과 더불어 가야 되는 동반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높은 방어막을 치고 혼자서만 행복해지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라산을 등반했던 지체 장애인들은 인도하는 자들과 밧줄로 연결되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신뢰하는 마음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름다움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도움을 받으면서도 비굴하지 않고, 작은 도움을 주고 우쭐해하지 않는 세상을 얼마든지 만들어갈 수 있다. 도덕성이 해이되고 양심을 잃었기 때문에 세상이 어둡고 캄캄하지만 그것을 정치인들이나 교육자들의 책임이라고만 말할 수 없다. 헛된 욕망을 이루려고 양심을 팔아버리거나 자신의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의 불편함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생활태도가 지옥 같은 세상을 만들고 있다.
 
세월호 사고에서 꽃다운 생명을 잃어버린 사람들과 그들을 구조하려다 소중한 생명을 희생한 사람들이 아름답고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한다. 다시는 비극적인 사고가 장애인들에게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장애인도 현재의 열악한 여건 가운데서도 스스로 행복을 만들어가는 존재로서 승리하시기를 기원한다.
 
 
4. 이호의 인물
 
나를 키운 건‘긍정의 힘’이었다
 
장래가 촉망되는 한 청년이 육군 소위의 임관을 받고 전방에 근무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병의 실수로 수류탄 사고를 당해 한 쪽 팔을 잃게 되었다. 병원에 입원 중 대학에 다닐 때 사귀던 여자 친구가 병원으로 병문안을 온데서 그는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몇 번이나 망설이고 기회를 엿보다가 여자 친구에게“팔이 없는 나를 지금도 좋아하느냐?”고 떨리는 가슴을 억제하면서 물었다.
 
반신반의 하면서 묻는 질문에 여자 친구는“나는 너의 팔을 좋아한 것이 아니고 너를 좋아했기 때문에 팔이 있고 없고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대답을 얻었을 때 정말로 천지를 다시 얻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자 친구는 그 때부터 병원 근방에 방을 얻어놓고 병원엘 드나들면서 정성을 다하여 간호하였다.
 
그러나 여자 친구의 아버지는 그것이 아니었다. 평생을 한 팔이 없는 사람의 팔이 되어야 하는 딸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그의 딸에게 그 남자를 포기하고 새 길을 찾을 것을 권유하였다. 그랬더니 그의 딸은 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다.
 
“그래서는 안 되지만 만약에 아버지가 한 팔을 잃으신다면 엄마가 아버지를 떠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을 하세요?”
 
그 말에 아버지도 딸의 뜻을 거역할 수 없어서 그 남자와 사귀는 것을 허락을 하게 되었다.
 
그 뒤 그는 제대하여 한 팔이 없는 것만큼 더 큰 노력을 하여 린스와 샴푸를 합친 효과를 내는 하나로를 개발하고, 20세부터 80 세까지 사용할 수 있는 2080 치약을 개발하고, 영상통화를 가능하게 한 show를 개발하는 등의 업적을 세워 show의 부사장이 되었다.
 
그가 바로 조서환 전)ktf부사장, 전)애경산업 이사이다.
 
그는 장군을 꿈꾸며 스물 셋 육군 소위로 복무하던 1978년 훈련 중 수류탄 폭발사고로 오른손을 잃었다. 병원에서 깨어보니 침대 옆을 지키고 서 있던 아버지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아들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아버지가 오히려 안쓰러워 위로의 말을 건넸다.“군인생활은 못하겠지만 살아 있지 않습니까. 영문과에 진학해 멋지게 살겠습니다.”
 
장군의 꿈을 접은 채 군복을 벗은 지 30년이 흐른 지금 그 아들은 업계에서 인정하는 마케팅의 귀재가 되었다. 일찌감치 기업의 임원이 돼‘별의 꿈’도 이뤘다. 조서환(현, 세라젬 헬스앤뷰티 대표이사), 그가 역경을 딛고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긍정의 힘’덕분이다. 한 손을 잃은 뒤 주변의 편견과 수없이 맞닥뜨렸지만 그에게는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긍정의 힘’이 있었다.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나는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로 힘을 북돋웠고, 남들이“해낼 수 없다”고 도리질 친 일을 보란 듯이 해냈다.
 
그를 든든하게 받쳐준 긍정의 힘은 인생의 변곡점 곳곳에서 발견된다. 각고의 노력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의 문을 두드렸지만 번번이 낙방의 고배를 들어야 했다. 면접관들은 그의 오른손 의수에 시선을 보내고는 불합격 처리를 해버렸다. 생각다 못해 장애를 숨기고 면접을 봤다. 하지만 면접 도중 장애사실을 털어놓고“손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로 일하는 것이 아닙니까”라며 당차게 맞섰다. 이를 지켜보던 한 여성 면접관이“지금 한 말 영어로 옮겨보시오”라고 하더니 그의 이야기를 듣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이튿날 합격통지서가 날아들었다. 그 여성 면접관은 장영신 애경 회장이었고, 애경은 그의 첫 직장이 됐다.
 
입사와 관련된 일화 한 가지 더. 2001년 KTF에 마케팅전략실장으로 입사할 때다. 내가 골프를 한 손으로 87타를 친다고 하자 이용경 사장은 깜짝 놀랐다.“우와! 한 손으로 87을 쳐요?”“네.”더 이상 다른 이야기가 필요 없었다. 대단한 노력파, 집념 있는 사람, 강인한 의지가 있는 사람, 그렇게 그 순간 손이 하나 없다는 큰 약점이 강점으로 미화되어 버린 것이다(중략-조서환 저‘모티베이터’중에서).
 
한 손이 없는 그가 골프를 할 수 있었던 것도‘긍정의 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에게 골프를 강권(?)한 사람은 장 회장이다. 그는 장 회장이 골프를 하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이 양반이 누구 약을 올리나”라고 생각했다. 이내 다시“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한다. 나는 할 수 있다”고 되뇌며 자신을 다독거렸다. 3개월 후‘머리를 얹는 날’9번 아이언 하나로 103개를 쳤다. 이제 그는 골프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전도사가 됐다고 말한다. 조 부사장이 골프를 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모두“양손을 가졌는데 못하겠느냐고 자신감이 생겨 곧장 연습장으로 달려간다”는 것이다.
 
조 부사장의 사회생활이 처음에는 순탄치 않았다. 매번 떨어지는 업무는 단순 잡무였다. 매일 바이어를 마중하러 나가 공항에서 피켓을 들거나, 영어문서 번역하는 일만 떨어졌다. 한 팔로 피켓을 들고 있자니 힘도 들고 눈시울도 따가워졌다. 그러나“바이어를 만나서 생생한 영어를 배우도록 하자,“내가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서류를 제일 먼저 보는구나”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기회와 행운이 따라왔다.
 
이후 일이 술술 잘 풀렸다. 마케팅 업무를 맡아‘하나로 샴푸,‘2080치약 등으로 대히트를 치면서 업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런 성과로 30대 중반에 일찌감치 외국계 회사의 영입제안을 받고 임원이 됐다. 영국 유니레버, 미국 다이알사, 스위스 로슈에서 마케팅 임원을 거쳤다. 외국계 회사로 옮기기 전 그는 장 회장에게“4년간 유학을 떠나는 마음으로 다국적기업에 다니겠다.”고 약속했다. 정확히 4년 뒤 그는 연봉 절반이 깎이고도 다시 애경으로 돌아왔다. 맨 처음 자기를 인정해준 장 회장과‘의리’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애경으로 컴백한 그는 다시 대박 행진을 이어갔고, 경영학박사 학위도 따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다. 경영학박사가 된 것은 대리시절 경영학을 배워보겠다고 결심한 뒤 16년 만이었다. 2000년 장 회장이 후계구도를 가시화하자 회사를 떠났다. 이동통신회사인 KTF로 둥지를 옮긴 그는‘Na’와 Drama’등의 획기적인 브랜드를 시장에 선보이며 마케팅 귀재의 명성을 이어갔다.
 
조 부사장은 포화되고 정체된 시장에서 마케팅 수완을 발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2080 치약’을 보면 알 수 있다. 애경은 당시 108개의 브랜드가 득실대는 치약시장에서 고전했다. 새로운 브랜드가 치고 들어가 살아남는 것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긍정의 힘’으로 기회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안 된다는 패배의식을 떨쳐버리고 어려울수록 간결하게 승부하라는 마케팅의 기본에 충실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20개 치아를 80세까지’의 명구이다. 이 명구를 내세운 2080치약으로 승부를 걸었고 시장은 결국 그의 손을 들어줬다. 애경은 2080 덕분에 치약시장에서 사상 처음으로 1위에 오르는 기쁨을 맛봤다.
 
업계에서는 조 사장의 잇따른 마케팅 성공신화를 두고‘미다스의 손’으로 부르기도 한다. 30년 전 잃어버린 오른손이 그에게 미다스의 손으로 돌아온 셈이다. 지칠 줄 모르는 집념과 열정으로 장애를 딛고 일어선 그의 인생은 가볍고 들뜬 작금의 세태에 적잖은‘무게’를 얹어준다.
 
 
5. 생각하는 오솔길
 
캘시 박사의 용기
 
독일에서 임산부들의 입덧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보인 신약이 개발되었습니다. 이 약품은 유럽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었고 미국에 진출하기 위해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식품의약국 연구원이었던 프랜시스 켈시 박사는 제품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하다며 승인을 미뤘습니다. 사람에게 수면제 효과를 보이는 성분 때문이었습니다.
 
제약사와 수입사는 켈시 박사에게 압력을 가하며 제품을 승인하도록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켈시 박사는 그런 압력에도 전혀 꿈적하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유럽에서 기형아가 급증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연구 결과 임산부들이 복용했던 이 약이 원인이었습니다. 이 약의 수면제 효과에 대한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미국 정부는 대통령 표창으로 그녀의 용기에 감사했습니다. 시상식에서 그녀는 다음과 같은 짧은 소감을 남겼습니다.
 
“저는 수많은 서류를 깔아뭉갠 것 밖에는 한 일이 없습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에 자신의 일에 철저하게 책임지는 사람이 더욱 필요한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우리의 위대한 영웅입니다.
 
 
6. 건강 코너
 
역사 속 건강이야기 (세종대왕의 다이어트 시크릿 ‘식치’)
 
예로부터 한국사회는 채식 위주의 식단 덕분에 뚱뚱한 사람이 드물었다. 그러나 요즘 우리 주위를 둘러보면 비만인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서구화된 식단으로 과도한 칼로리 섭취를 하는 반면 교통수단의 발달로 운동량은 부족하게 되면서 현대인들은 비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다.
 
옛 선왕 중에도 비만으로 고통 받던 분이 있었다, 바로 세종대왕이다. 세종대왕은 어려서부터 운동을 멀리했고 육식을 즐겼다. 그래서 비만으로 인한 각종 생활 습관병으로 고생했다. 이에 어의 전순의(세종ㆍ문종ㆍ단종ㆍ세조의 4대에 걸쳐 30여 년간 궁중 어의로 활동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의관)는 음식으로 처방하는 식치를 행했는데, 세종대왕의 다이어트 비법을 자세하게 알아보자.
 
조선 문화의 찬란한 전성기를 이끈 세종대왕
 
세종대왕은 태종의 셋째 아들로 1418년에 22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재위 기간 동안 유교정치의 기틀을 확립하고 공법을 시행하는 등 각종 제도를 정비해 조선왕조의 기반을 굳건히 했다. 또 축적된 국력을 바탕으로 국토를 넓혔고 정치적ㆍ경제적 안정으로 문화가 크게 융성했다. 한글을 창제하고 과학기술을 크게 발전시켰다. 집현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학문 연구와 각종 편찬사업을 비롯하여 음악ㆍ미술 등 예술 환경이 활발했다. 훈민정음의 완성과 반포는 조선시태 문화유산의 뛰어난 업적으로 손꼽힌다.
 
건강관리 소홀로 비만 질환에 시달려
 
“주상은 사냥을 좋아하지 않지만 때때로 야회활동을 하면서 몸의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태종은 막 즉위한 아들 세종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대왕’의 칭호를 받을 만큼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으로 평가받는 세종대왕이었지만 자기관리에는 소홀했다. 세종대왕은 식성은 좋고 운동을 싫어해서 건강이 없으면 수저를 들지 않을 정도로 육류를 좋아했기 때문에 몸도 비중했다. 비만과 비만으로 인한 당뇨병, 고혈압과 같은 질병에 시달렸다. 당뇨병 환자에게 필수인 운동을 하지 않아 엉덩이와 옆구리에 종기가 부어올라 앉아 있는 것은 물로 보행도 어려웠다고 한다.
 
음식으로 병을 다스리는 ‘식치’
 
세종대왕의 병환이 깊어질수록 어의 전순의의 시름도 깊어졌다. 세종대왕이 평소 육식을 즐기는 터라 한약을 처방할 수도 없었다. 이에 전순의는 약보다 음식으로 병을 다스리는 새로운 방법을 모색했고, 최고의 식이요법서인 ‘식료찬요’를 편찬했다.
 
이 책의 핵심은 병이 났을 때 약을 먹는 것보다 음식으로 치료하는 식치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식치’란 식료하고도 하는 음식물을 알맞게 조절하여 병을 치료하는 것을 뜻한다. 세종대왕의 체중 감소와 병 치료를 위해 밥상에 올라왔던 식치 음식에는 구선황 도고(약떡)는 9가지 약재(율무, 백봉령, 산약, 맥아, 백편두, 연자육, 검인 등)로 만든 건강식이다.
 
9가지 약재로 만든 가루를 가지고 떡을 만들거나 미숫가루나 우유와 함께 섞어 한 끼 식사대용으로 먹으면 좋다. 죽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당뇨병과 고혈압에 효과적이다.
 
전약은 소의 족이나 가죽을 푹 무르게 삶아서 대추, 계핏가루 등을 넣어 버무린 후 밤, 잣을 넣어 다시 쪄낸 음식이다. 이 외에도 우무전과 타락죽, 제호탕 등을 식치 음식으로 먹었다.
 
내 몸에 맞는 음식 정확하게 알기
 
병이 났을 때 약보다 음식이 먼저다. 세조는 ‘의약론’ 이라는 책에서 ‘팔의론’을 제창하며 ‘식의’를 ‘약의’ 보다 높게 평가했다. 또한 수ㆍ당나라 때의 명의였던 손사막 역시 “질병을 치료하는데 먼저 음식으로 치려하고 그래도 낫지 않으면 약을 쓰라”고 했다.
 
현대인들은 병이 나면 우선 병원을 찾고, 병원에서는 의례히 약을 처방한다. 그리고 살을 빼기 위해 다이어트 한약, 식용억제제 등을 복용한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순서가 있다. 평소에 음식을 잘 먹으면 병이 생기기 않기 마련이고 만약 병이 생기면 환자의 상태에 맞는 음식을 먹고 운동을 병행한다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그 후에 약을 써도 늦지 않다.
 
그러나 음식이 몸에 맞지 않는다면 독이 될 수도 있다. 또 음식의 성질에 따라 함께 먹으면 상극이 되어 탈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 식치를 시행하기 앞서 충분한 조사와 필요에 따라 전문가에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좋다. 식치는 음식을 단순한 음식으로만 보지 않고 약으로 보고 먹었던 선조들의 지혜다.
 
 
7. 짧은 글 긴 생각
 
사과 좀 깎아 주세요
 
암 병동 간호사로 야간 근무할 때였다. 새벽 다섯 시쯤 갑자기 병실에서 호출 벨이 울렸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그런데 대답이 없었다. 환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 부리나케 병실로 달려갔다. 창가 쪽 침대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병동에서 가장 오래 입원 중인 환자였다. “무슨 일 있으세요?”
 
놀란 마음에 커튼을 열자 환자가 태연하게 사과를 내밀며 말했다. “간호사님, 나 이것 좀 깎아 주세요.” 헐레벌떡 달려왔는데 겨우 사과를 깎아 달라니, 맥이 풀렸다. 옆에선 그의 아내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런 건 보호자에게 부탁해도 되잖아요.” “그냥 좀 깎아 줘요.”
 
다른 환자들이 깰까 봐 실랑이를 벌일 수도 없어 사과를 깎았다. 그는 내가 사과 깎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더니 이번에는 먹기 좋게 잘라 달라고 했다. 나는 귀찮은 표정으로 사과를 반으로 뚝 잘랐다. 그러자 예쁘게 잘라 달란다. 할일도 많은데 별난 요구 하는 환자가 못마땅해 못들은 척 사과를 대충 잘라 주었다. 나는 사과 모양새를 여전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그를 뒤로하고 서둘러 병실을 나왔다.
 
며칠 뒤, 그는 상태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삼일장을 치른 그의 아내가 수척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사실 새벽에 사과 깎아 주셨을 때 저 깨어 있었어요. 그 날 아침, 남편이 결혼기념일 선물이라면서 깎은 사과를 내밀더라고요. 제가 사과를 참 좋아하는데 남편은 손에 힘이 없어 깎아 줄 수가 없었어요. 저를 깜짝 놀라게 하려던 마음을 지켜 주고 싶어서요. 그래서 간호사님이 바쁜 거 알면서도 모른 척 하고 누워 있었어요. 혹시 거절하면 어쩌나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정말 고마워요.”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나는 그 새벽, 가슴 아픈 사랑 앞에 얼마나 무심하고 어리석었던가. 한 평 남짓한 공간이 세상의 전부였던 환자와 보호자. 그들의 고된 삶을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나 자신이 너무도 부끄러웠다. 그녀가 눈물 흘리는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 주며 말했다. 남편이 마지막 선물을 하고 떠나게 해 줘서 고마웠다고, 그것으로 충분했노라고.
 
 
8. 인물 기획 취재
 
2014년 장애인의 날 ‘서초야 놀자’ 모범장애인상(서초구청 주최) 수상자 박종근 장로를 만나다
 
1) 서초야 놀자 모범장애인상 수상 소감 한마디 해주세요.
먼저 이 상을 받게 돼서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원장님과 직원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상은 받기가 송구스럽습니다. 앞으로 더욱 모범적인 삶을 살라는 메시지로 여기도록 하겠습니다.
 
2) 어떻게 시력을 잃게 되셨는지요?
1999년 12월 운전 중에 덤프트럭과 충돌하여 자동차 앞 유리가 모두 깨지고, 차가 완전히 찌그러지는 사고를 당하였습니다. 큰 사고였지만 이상하게도 손목만 조금 다치고 아무 곳도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난 후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하여 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받았고 망막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권유했지만, 당시에는 시력이 어느 정도 남아있었기 때문에 수술을 받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시력이 계속 나빠져 결국 세 차례에 걸쳐 수술을 받게 되었지만 수술 중 시신경을 건드려 왼쪽 눈을 실명 하게 되었고 몇 개월 후 오른쪽 눈마저도 실명하게 되었습니다.
 
3) 새빛맹인재활원에 언제 입소하게 되셨는지요?
그 전부터 시각장애인이신 안요한 목사님께서 시각장애인 사역을 하고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습니다. 실명 후 새빛맹인재활원에 전화를 하여 현재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고 2005년 12월 7일 새빛맹인재활원에 입소하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반갑고 친절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다음 날 안요한 목사님과 사모님을 만나게 되었는데 안요한 목사님께서 어느 정도 보이느냐고 제게 물어보셨습니다. 저의 “낮과 밤만 구분할 수 있습니다.” 라는 대답에 안요한 목사님께서 “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후 저는 “내가 그 동안 인생을 헛살았구나! 이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분이 장애인들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데 나는 그 동안 무엇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하나님께서 새빛맹인재활원으로 보내주신 것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4) 새빛관악단원으로 활동하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재활교육을 마친 후 수고하시는 안 목사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기도하며 찾던 중 우연히 색소폰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지만 주위의 도움으로 색소폰을 구입 한 후 “하나님 저는 박자도, 음정도 아무 것도 모릅니다. 지혜를 주시고 저 혼자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합주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안 목사님의 배려로 한 사람 한 사람 악기를 연습하고 맞추어 보면서 색소폰에 트럼펫, 아코디언, 플루트까지 합하여 새빛관악단이 만들어지게 되었습니다. 실명 후에 새빛맹인재활원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거쳐 가나안땅에 들어갔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실명을 통하여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셨고 시각장애인들의 가나안땅인 새빛맹인재활원으로 인도하셨던 것이었습니다.
 
5) 본인이 생각하시는 약점과 강점은 무엇입니까?
나이(72세)가 많아서 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나이가 많은 게 약점이 되겠지요. 그리고 강점은 마음을 먹으면 끝까지 가는 결단력이 있습니다. 무엇을 하고자 하면 끝가지 가는 열정이 강점이 되겠지요.
 
6) 본인이 생각하는 인생에서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세상적으로 건축 일을 해서 돈도 많이 벌었으나 결론은 실패했습니다. 그때 사고로 눈을 잃고 새빛에 들어와 제 2의 인생을 다시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극복한 삶)
 
7) 앞으로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앞으로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열중하고 싶습니다. 남은 평생에 작지만 귀중한 달란트를 받은 소명으로 섹소폰 악기연주를 통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고, 성전에서 예배와 찬양하는 삶과 장애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과 함께 고민하고 나누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9. 감사의 기적, 둘
 
감사 십계명
 
스펄전 목사
 
 
1. 생각이 곧 감사다.
생각(think)과 감사(thank)는 어원이 같다. 깊은 생각이 감사를 불러일으킨다.
 
2. 작은 것부터 감사하라.
바다도 작은 물방울부터 시작되었다. 아주 사소하고 작아 보이는 것에 먼저 감사하라. 그러면 큰 감사거리를 만나게 된다.
 
3. 자신에게 감사하라.
성 어거스틴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은 높은 산과 태양과 별들을 보고 감탄하면서 정 작 자신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감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4. 일상을 감사하라.
숨을 쉬거나 맑은 하늘을 보는 것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절대 할 수 없는 감사가 어 려운 감사이다.
 
5. 문제를 감사하라.
문제에는 항상 해결책도 있게 마련이다.
 
6. 더불어 감사하라.
장작도 함께 쌓여 있을 때 더 잘 타는 법이다. 가족끼리 감사를 나누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로 돌아온다.
 
7.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라.
결과를 보고 감사하지 말라. 문제 앞에서 드리는 감사가 아름답다.
 
8. 잠들기 전 시간에 감사하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짜증과 걱정을 안고 잠자리에 든다. 잠들기 전의 감사는 영혼의 청소 가 된다.
 
9. 감사의 능력을 믿고 감사하라.
감사에는 메아리 효과가 있다. 감사하면 감사한 대로 이루어진다.
 
10. 모든 것에 감사하라.
당신의 삶에서 은혜와 감사가 아닌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 “별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달빛을 주시고, 달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햇빛을 주시고, 햇빛에 감사하는 자에게 영원 히 지지 않는 주님의 은혜의 빛을 주신다.”
 
 
10. 함께하는 사회
 
시회적인 편견을 극복하고 승리하시라
 
- 김순자 / 새빛시인교회 -
 
어느 장애인시설이 동네에 들어왔다고 동네사람들이 나와서 시위하며 거품을 물고서 아우성치는 모습을 TV에서 본 적이 있다. 지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무려 17명이나 자신의 자녀로 입적하고 그들을 위해 추운겨울에도 손빨래를 하면서 자신의 자녀들을 낳지 않았던 어느 목사님 부부의 이야기다.
 
그의 이름은 장진남 목사님이다. 목사님은 1964년 동경 올림픽에 미들급 권투선수로 출전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겠다는 각오를 함으로써 자신들의 영광이나 개인적인 행복을 포기해버렸다. 장진남 목사님은 소외계층 중에서도 정상적으로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떠한 희망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이 가장 불쌍한 존재라고 생각함으로써 버려진 사람들을 모아서 가정을 꾸려나갔다.
 
그 당시의 급한 사정은 장애인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TV와 세탁기가 절실하게 필요하였다. 그런데 삶의 터전이 철거되면서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독지가의 도움으로 적당한 시설을 갖추려고 했지만, 동네 사람들의 반발이 일어남으로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장애인이 되고 싶어서 장애인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지도 못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돌보면서 온갖 고생에도 그들이 웃으면서 행복해할 때에 행복을 느끼면서 목사님은 헌신하였다.
 
2005년도에 용인의 새빛요한의 집을 건축하게 되었는데, 건축허가를 받고서도 동네에서 반대시위를 함으로써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 모른다. 동네 사람들이 그처럼 반대했던 것은 시각장애인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한 마디로 재수가 없다는 뜻이었다. 맹인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반대하던 동네 사람들이 누그러지고 공사를 진행하면서도 언제, 어떻게 마음이 변할는지 몰라서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건축공사가 완료되고 입주하여서 오늘까지 살고 있다는 것은 당시의 반대시위를 보았던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하게 지낸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서 동네 사람들의 마음이 녹아서 오늘날 동반자로서 살아가게 되었는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다.
 
요즈음은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변해졌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의 협조적인 모습들도 눈에 뜨이게 변하고 있다. 새빛요한의 집에서는 무료로 의료봉사를 매년 시행함으로써 도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주는 공동체로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 할 수가 없다. 하나님께서 소망교회의 의료봉사단을 통해서 지역의 주민들의 건강을 돌볼 수 있게 하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고 있다.
 
아직은 부족하지만. 장애인도 사회의 일원으로써 떳떳하게 경쟁의 대열에 참석할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도해본다. 물질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마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나눔으로써 나라의 장래를 이루는 동반자로서의 자격이 인정되고 함께 손잡고 웃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장애를 회복시킬 것을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11. 감사의 기적, 셋
 
제일 작은 빵
 
옛날 독일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어느 해 극심한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돈 많은 노부부가 날마다 빵을 만들어서 동네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자, 이 자루 속에 한 사람이 한 개씩 먹을 수 있는 빵이 있단다. 꼭 한 개씩만 가져가야 한다. 내일 오면 또 빵을 줄게.”
 
아이들은 서로 조금이라도 더 커 보이는 빵을 차지하겠다고 소란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한 여자아이만큼은 예외였습니다. 그라첸이라는 이름의 그 아이는 언제나 맨 끝에 줄을 섰습니다. 자연히 그 아이에게 돌아가는 빵은 항상 제일 작은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저마다 더 큰 빵을 차지하는 것에 정신이 팔려서 빵을 나누어 준 노부부에게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라첸은 제일 작은 빵을 받으면서도 언제나 잊지 않고 깍듯하게 노부부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라첸은 그날도 맨 끝에 서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받은 빵은 다른 때보다도 유난히 더 작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라첸은 노부부에게 빵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그라첸은 집에 돌아와서 빵을 먹으려고 한 입 베어 물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만 외마다 비명을 지를 뻔했습니다. 깜짝 놀라 빵 속을 보니 금화 한 닢이 들어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쪽지도 함께 있었습니다.
“이것은 너처럼 작은 것도 잊지 않고 감사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가 마련한 선물이란다.”
 
* 작은 감사 큰 행복 (전광 저) 발췌
 
 
12. 주제가 있는 글
 
풀과 꽃
 
- 김양규 -
 
사람은 보이는 대로 보고, 듣기는 대로 듣는 존재가 아니다.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 존재이다.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는 존재이다.
 
오해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해하려고 마음먹으면 모든 일에 다 오해가 된다. 오해하고 싶은 대로 들리기 때문이고 그렇게 또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해 역시 하고 싶은 사람이 한다.
 
이해하려고 마음먹으면 이해 못할 일이 없다. 이해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이해가 된다. 이해하려는 사람에게는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이 모두 이해가 된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한다. 그래서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도 제각각 생각이 다 다르다. 보는 관점이 다르고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방법이 다 다르다. 그래서 나중에 보면 엄청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오해도 습관이다. 자꾸 하면 잘하게 된다. 그것은 이해가 습관인 것과 마찬가지이다. 자꾸 이해하려는 연습을 하면 잘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풀과 꽃이란 말이 또 생각난다. 베려고 생각하면 풀 아닌 것이 없고, 품으려고 생각하면 꽃 아닌 것이 없다. 풀도 자세히 보면 꽃이다. 풀의 입장에서, 꽃의 입장에서도 다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꽃을 풀로 보고 벨 수도 있고, 풀을 꽃으로 보고 품을 수도 있다.
 
즉, 정확히 말하면 오해지만, 그 오해는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보니 그렇더라. 신앙생활 해보니 그렇더라. 보기에 따라서 풀로 보이기도 하고 꽃으로 보이기도 하더라. 풀도 자세히 보면 꽃인데, 다른 마음으로 보면 꽃도 자세히 보면 풀로 보일 수도 있다.
 
인류의 역사는 오해의 역사라던가. 오해하려고 마음먹은 사람에게는 도시락 싸서 따라다니며 말려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건 결국 자신의 마음먹기 나름이다.
 
하나님 말씀 안에서, 믿음 안에서 성령님이 주시는 힘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 아닌가 싶다.
 
* 월간 해와 달 발췌
 
 
13. 다시 읽는 명작
 
어떻게 작은 악마는 빵 조각을 보상하였는가?
 
툴스토이
어떤 가난한 농부가 아침도 먹지 않고, 점심으로 빵 한 조각만을 싸 가지고 밭갈이를 하러 나갔다. 농부는 쟁기를 내리고 수레를 덤불 밑에 끌어다 놓은 다음, 그 위에 빵을 얹고 겉옷으로 빵을 덮었다. 일을 하다가 이윽고 말도 지치고 농부도 시장기를 느꼈다. 농부는 쟁기를 밭에 꽂아 둔 채 말을 풀어서 꼴을 먹도록 놓아준 다음 자기도 겉옷이 있는 쪽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농부는 겉옷을 들춰 보았다. 그러나 빵 조각이 없었다. 그는 부근을 찾아보기도 하고, 겉옷을 뒤집어 털어 보기도 했으나 빵 조각은 없었다. 농부는 참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했다. ‘온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었는데… 누가 빵을 가지고 갔을까?’
 
그러나 사실은 농부가 밭을 갈고 있는 동안 작은 악마가 빵 조각을 훔쳐 내고, 덤불 뒤에 숨어서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농부가 화를 내고 욕을 해댐으로써 큰 악마를 기쁘게 해주리라 생각하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던 것이었다. 농부는 약간 실망했다.
 
“할 수 없지. 설마 굶어 죽기야 하려구. 누군가 훔쳐갔다면 꼭 필요해서 가져갔겠지. 아무나 먹게 내버려 두자.” 그리고 농부는 우물로 가서 물을 잔뜩 마시고, 한숨을 쉬고 나서 쟁기를 메고 또 밭을 갈기 시작했다.
 
작은 악마는 농부로 하여금 죄를 짓게 만들지 못하자 당황하여 큰 악마에게 달려갔다. 그는 큰 악마 앞에 나가, 자기가 농부의 빵을 훔쳤는데도 농부는 욕을 하기는 커녕 오히려 복 받을 말만 했다고 보고했다. 큰 악마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
 
“만약 농부가 정말로 너를 이겼다면, 그것은 모두 너의 잘못이다. 네 방법이 나빴기 때문이야. 만약에 농부들과 그들의 아낙들까지 그런 생활 태도를 갖게 되면, 우리들은 할 일이 없어져서 살아갈 수가 없어지잖아? 절대 그대로 둘 수는 없어! 한 번 더 농부에게 가서 그 빵 조각을 보상하고 오너라. 만약 3년 안에 그 농부에게 이기지 못한다면, 네놈을 성수 속에 처박아 줄 테다.”
 
작은 악마는 깜작 놀라 지상으로 달려 나가 어떻게 자기의 죄를 보상해야 좋을지 그 방법을 궁리하기 시작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마침내 묘안이 떠올랐다. 작은 악마는 성실한 사람으로 둔갑하여 가난한 농부네 집 머슴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여름에 가뭄이 들 것을 예상하여 농부에게 습지에 다 씨앗을 뿌렸다. 그랬더니 다른 농부네 밭에서는 모든 농작물이 타서 말라죽었는데, 이 가난한 농부네 집에서는 잘 자란 이삭이 영글어 풍작이 되었다. 그래서 농부에게는 곡식이 그 이듬해 추수 때까지 먹고도 남아돌 정도였다.
 
다음 해 여름, 머슴은 농부에게 언덕 위에 씨를 뿌리라고 권했다. 그랬더니 그해 여름에는 비가 몹시 많이 내렸다. 다른 집 농작물은 모두 쓰러지고 비를 맞아 썩어서 제대로 영글지 않았으나 이 농부네 언덕 위의 밭에서는 곡식들이 아주 잘 영글었다. 그래서 또다시 많은 곡식이 생겼고, 그것을 처분하기 곤란할 정도였다. 그래서 머슴은 농부에게 밀을 빻아 술을 담그라고 일러 주었다. 농부는 술을 담가 자기도 마시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나눠 주었다.
 
작은 악마는 큰 악마에게 가서 빵 조각을 보상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늘어놓았다. 큰 악마는 그것을 살펴보러 나섰다. 그가 농부네 집에 가 보니 농부는 돈 많은 마을 사람들을 초대하여 술대접을 하고 있었다. 농부의 아내도 손님들에게 술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그만 탁자 모서리를 돌다가 옷이 걸려 잔을 쓰러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농부는 화를 내며 아내를 꾸짖었다.
 
“조심해, 못난 것 같으니! 이런 고급술을 엎지르다니. 이게 뭐 구정물인 줄 알아! 다리가 삐었어?” 작은 악마는 팔꿈치로 큰 악마를 쿡쿡 찔렀다.
“보십시오. 이제 저자도 빵 조각을 아까워하게 되었어요.”
농부는 아내를 마구 호통 쳐 놓고, 손수 술시중을 들기 시작했다.
 
그때 들일을 하고 돌아가던 가난한 농부가 초대도 하지 않았는데 그곳에 들어왔다. 그 사람은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고 보니 모두들 술을 마시고 있어, 자기도 한 잔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들일을 하느라 잔뜩 지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연방 군침을 삼키며 앉아 있었으나 주인은 그 사람에게 한 잔도 권하지 않고,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무에게나 마구 퍼 먹일 수는 없지!”
큰 악마는 이 말이 매우 마음에 들었다. 작은 악마는 코를 벌름거렸다.
“두고 보십시오. 지금부터가 시작이니까요.”
 
돈 많은 농부들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 잔씩 돌렸다. 그들은 서로 공치사를 늘어놓으며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여 댔다. 큰 악마는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작은 악마를 칭찬했다. 그러고는 덧붙였다.
 
“만약 저 술 때문에 저렇게 교활해져서 서로가 서로를 속이게 된다면, 저놈들은 이미 우리에게 진 거야.”
 
“아무튼 두고 보십시오.” 작은 악마는 말했다.
“아직도 멀었습니다. 저놈들에게 한 잔만 더 먹여 보십시다. 저놈들은 지금 저렇게 여우처럼 꼬리를 흔들며 서로 속이고 있지만, 곧 심술 사나운 이리가 될 겁니다.”
 
사람들은 두 잔재 술을 마셨다. 그러자 그들은 음성이 차차 커지고 거칠어졌다. 간지러운 공치사 대신 그들은 서로 욕설을 퍼붓고 화를 내며 멱살을 잡고 싸움을 했다. 주인도 싸움판에 끼어들어 호되게 얻어맞았다. 큰 악마는 가만히 그것을 보고 있었다. 그는 이것도 마음에 들어 했다.
 
“거 참, 재미있는데.” 그는 말했다. 그러나 작은 악마가 재빨리 대답했다.
“아직도 멀었습니다. 놈들에게 석 잔째 먹여 보십시오. 지금 놈들은 이리처럼 씨근대고 있지만, 잠시 후에 석 잔을 마시며 당장 돼지처럼 되어 버릴 테니까요.”
 
사람들은 석 잔째 마셨다. 그러자 완전히 취해서 녹초가 되어 버렸다. 그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소리를 지르며 남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윽고 그들은 한 사람,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씩 떼를 지어 거리로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주인은 손님을 배웅하러 나왔다가 물웅덩이에 빠져서 온몸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채 돼지같이 뒹굴며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것은 더욱더 큰 악마의 마음에 들었다.
 
“거 참 아주 좋은 음료수를 발견했구나. 이것으로 훌륭하게 빵 조각을 보상한 게 되었구나. 그런데 너는 어떻게 해서 이런 음료수를 만들었지? 넌 틀림없이 그 속에 여우의 피를 넣었을 거야. 그래서 사람들이 여우처럼 교활해진 게 틀림없어. 그 다음에 이리의 피를 넣고, 돼지의 피를 넣었겠지. 그러니까 놈들이 저렇게 된 게 아니겠어?”
 
“아뇨.” 작은 악마는 말했다. “저는 그런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전 다만 그자에게 여분의 곡식을 영글게 해 주었을 뿐입니다. 그것은 즉, 그 짐승의 피는 항상 그자 속에 있었던 것이지만, 그자가 필요한 만큼의 곡식을 마련할 동안은 그 피가 출구를 찾을 수 없었던 거지요. 그즈음에는 그자가 한 개뿐인 빵 조각이라도 아끼지 않았는데, 곡식에 여유가 생기니 무슨 좋은 위안거리가 없을까 궁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자에게 술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자가 하느님의 하사품으로 술을 담그기가 무섭게 그의 몸속에 여우와 이리와 돼지의 피가 솟아나지 뭡니까? 그래서 이제는 그 술만 마시면 언제든지 짐승이 되어 버린답니다.”
 
큰 악마는 작은 악마를 칭찬하고, 빵 조각의 실패를 용서한 다음 무리들 중의 우두머리로 발탁해 주었다.
 
* 톨스토이 단편선 발췌
 
 
14. 생명의 양식
 
바람과 풍랑을 바라봅니까?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가는 지라 (마14:29~30)
 
바람이 실제로 사납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풍랑은 실제로 높이 일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처음에 이것들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바람과 풍랑을 고려하지 않았고 단지 주님만 인식했습니다. 그때 그는 발을 내딛어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실제 일어난 일들을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당장 물속에 빠져들었습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베드로로 하여금 파도 위에서분 아니라 파도 밑에서도 걷도록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인식하지 않는다면 둘 다 불가능한 것입니다.
 
어떤 문제를 당하면 우리는 당장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러나 자신에 관한 여러 형편을 고려하게 되면서 침몰합니다. 만일 당신이 주님만 인식하고 있다면 주께서 당신을 어떤 상황으로 이끌고 가시든 상관이 없습니다. 실제 바람과 풍랑은 언제나 잇는 것이고 단지 당신이 그것을 바라보는 즉시 당신은 주눅이 들면서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꾸짖으십니다. “왜 의심하였느냐?” 우리가 처한 실제 상황 가운데서 예수님을 계속 인식하며 온전하게 주 만 의지하십시오.
 
만일 하나님께서 말씀하였을 때 단 일초라도 주님게 다진다면 모든 것이 끝장입니다. 절대로 “그래, 정말로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일까?”라고 의심하지 마십시오. 조금도 주저 없이 당장 주님께 자신을 던지십시오. 당신은 언제 주의 음성을 듣게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미세한 음성이라도 주님의 음성을 깨닫는다면, 주저 없이 주께 던지십시오. 모든 것을 믿고 완전히 주께 맡기는 것만이 주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기꺼이 주께 맡길 때 당신은 주의 음성을 더욱 분명하게 듣게 될 것입니다.
 
* 주님은 나의 최고봉 발췌
 
 
 
 
 
 
 
 
 
 
 
 
 
 
= 독자안내 =
 
일상생활에서 재미있었던 사연, 혹은 감동적이었던 실화를 적어 보내주십시오. 추첨을 통하여 소정의 상품과 함께 점자새빛(가을호)에 독자코너에 사연을 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응모는 반드시 우편접수를 원칙으로 하며, 아래 기재된 주소로 점자 혹은 묵자로 작성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
문의: 02-533-9820
주소: 서울시 서초구 방배4동 858-39 점자새빛 출판부 우편번호 137-838
 
 
= 입소안내 =
 
1. 새빛맹인재활원 (서울 서초구소재 시각장애인 생활시설)
무의탁 시각장애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활보호와 재활교육 과정을 도와주고 있는 사랑의 공동체로써, 재활의 꿈을 만들어가며 당당히 살아갈 수 있도록 디딤돌을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2. 새빛요한의 집 (경기도 용인소재 시각장애인 양로시설)
‘새빛요한의 집’은 사회에서 소외된 연로한 시각장애인에게 삶의 안식처를 제공하고, 낮은 곳에 임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생활보호시설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나 이웃에 이러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시각장애인이 계시면 지금 곧 전화 주십시오. 새로운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상담전화: 02-533-9863,4
지참 서류: 자기소개서 1통, 건강 진단서(보건소) 1통, 주민등록등본 1통, 가족관계확인서 1통, 반명함판 사진 2장
 
 
= 이용안내 =
 
새빛장애인예술지원센터(장애인문화예술활동 지원)
2012년 개관한 새빛장애인예술지원센터는 시각장애인을 비롯한 모든 장애인에게 전문적인 예술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장애인의 예술적 잠재능력을 개발하여 자신감 회복을 도우며, 잔존능력 개발 및 직업능력 향상을 통하여 건전한 사회 일원으로써 통합이 가능하도록 지원하고자 합니다. 예술교육을 받기 원하시는 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바랍니다.
 
상담전화: 02-533-98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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