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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봄호 묵자

게시물 정보

작성자 새빛US 작성일14-05-12 12:00 조회5,337회 댓글0건

본문

~ = 점 자 새 빛 =
시각장애인을 위한 신앙과 교양지

 

2 0 1 3 년   ------------------------------------------- 봄 호


등      록 ------------------------------------- 2011년 11월 3일


등 록 번 호 ------------------------------------- 서초 바00097호


제   54   권  ----------------------------------- 제1호 통권336호


발  행  일  ------------------------------------- 2013년 3월 15일


주      소  --------------------------- 서울 서초구 방배4동 858-39


전      화  --------------------------------------- 02-533-9820


발행겸인쇄인 ------------------------------------------- 안 요 한


인 쇄 처    ------------------------- 낮은데로 임하소서 새빛복지재단
                                                           점자새빛 출판부

 

= 차  례 =

 

1. 이호의 시 --------------------------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오정방)


2. 이호의 말씀 ---------------------- 위기는 기회이다(엄로이스 선교사)


3. 가슴 찡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 꽃을 파는 할머니(이철환)


4. 짧은 글 긴 생각 ----------------------------------- 보물(김관선)


5. 주제가 있는 글 ------------- 거대한 역사를 향한 미래를 열어라(이만열)


6. 건강하게 삽시다 ------------- 면역력 키워주는 7가지 생활습관(이현주)


7. 인내(人匂:사람 사는 냄새) 이야기 --------- 저는 행복한 사진가입니다.(이강)


8. 이호의 인물 -------------------------- 희망을 노래하는 아버지(김문영)


9. 생각의 여유 ------------------------------ 비언어적 요소의 힘(홍의숙)


10. 알아봅시다! -------------------------- 똥, 그는 누구인가?(남호탁)


11. 좋은생각 -------------------------------- 빛나는 발명가(이귀훈)


12. 생명의 양식 --------------------- 지혜를 누이처럼, 명철을 친족처럼

 

= 이호의 시 =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 오정방 -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났으나
그는 거룩한 신성을 가지셨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몸소 이 땅에 내려오셨으나 그는
우리와 똑 같은 인성을 가지셨다

때리면 아픔도 아시고
아프면 고통도 느끼시고
고통을 받으면 피하고도 싶으시고…
인성과 신성을 함께 지니셨으나
그는 성경을 이루려고
묵묵히 처절한 수난을 당하신다

능력이 없어서 채찍을 맞는 것이 아니요
피할 수 없어서 고난을 겪는 것이 아니시다
챗찍을 든 빌라도의 군사들에게
눈을 멀게 할 수도
사지를 마비시킬 수도
아예 숨통을 끊어 놓으실 수도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에,
태양을 숨겨서 흑암을 만들 수도
폭풍을 일으켜 만리 밖으로 내칠 수도
지진을 일으켜 땅속에 묻으실 수도 있지만
그것조차 하나님의 원하심이 아니기에
홀로 그는 채찍을 맞고 수모를 마다 않으신다
보혈을 흘리고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
하나님의 깊은 의지로 알기에 순종하신다
하나님의 창조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내가 짊어져야할 십자가,
우리가 메고 가야할 십자가를
그는 우리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감당하셨다
내가 흘려야 할 피,
우리가 쏟아야 할 피를
죄 값으로 죽어 마땅할 인간들을 구속하기 위해
오, 거룩하고 존귀하신 이름 예수,
그는 모두 바치셨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죽여서라도 우리를 살리시려는
고귀한 사랑을 확증하는 것이라 믿으셨기 때문에…

 

= 이호의 말씀 =

 위기는 기회이다

  - 엄로이스 선교사 -


  우리는 일평생을 살면서 여러 가지 작고 커다란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인생은 위기의 연속이라 할 수 있지요. 웹스터는 “위기는 어려운 결정적 시기이며, 어떤 일을 하는 과정 속에서의 전환점”이라고 말합니다. 중국어에서 위기는 위험과 기회의 두 가지 의미를 모두 가지고 있습니다. 즉, 위기는 위험한 일이지만 그 이면에는 기회가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는 예측할 수 있는 위기의 순간들이 있습니다. 자녀의 사춘기와 중년기(속칭 사추기), 갱년기, 자녀들의 대학 입학과 결혼으로 인한 빈둥지증후군 등이 그런 위기들입니다. 그러나 예측할 수 없는 위기들도 있습니다. 정기 건강검진 결과 발견된 암세포와 수술, 뜻밖의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나 가족의 죽음, 작별인사를 하지 못한 채 맞이한 부모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등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이렇게 묻습니다.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을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나는 도대체 누구지?”

 슬플 때 함께 슬퍼하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할 친구, 믿음의 친구가 있으면 위기의 순간에 큰 도움이 됩니다. 영원한 우리의 친구 되시는 예수님이 계시면, 그 분의 말씀이 위기 중에 큰 위로가 됩니다. 그 위기가 징계이든지 시험이든지 우리가 겪어야 한다면 담담히 통과할 수 있도록, 견디어 나아갈만한 힘과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해야겠지요. 기도할 힘이 없어도 괜찮습니다. 우리는 연약한 육신을 갖고 있는 죄인이니까요. 그러나 우리에게 능력의 하나님, 천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우리의 아버지가 계십니다. 우리의 주님 예수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성령께서 탄식함으로써, 우리의 동역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아파하며, 그 위기 가운데서 벗어나 더 큰 기회로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시편 139:7)”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위기는 위험하지만 그것을 통해 성숙의 기회가 됩니다. 그리스도의 완전하심과 같이 완전함에 이르는 기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가슴 찡한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 =

꽃을 파는 할머니
 
- 이철환 -

 민혜네는 국립묘지 앞에서 꽃집을 하고 있었다. 그 부근에는 꽃집이 민혜네 하나뿐이라 꽃을 사려는 사람들은 모두 민혜네로 왔다. 그런데 묘소 앞에는 허리가 활처럼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좌판에서 꽃을 팔고 있었다.
 “아빠, 저 할머닌 좀 웃긴 거 같아. 아빠도 알어? 저 할머니가 묘소 앞에 놓인 꽃들을 몰래 가져다 파는 거?”
 “아빠도 알고 있어.”
 “아니 팔 게 따로 있지, 그걸 가져다 팔면 어떻게 해? 아무래도 관리소 사람들한테 말해야겠어.”
 “오죽이나 살기 힘들면 죽은 사람들 앞에 놓인 꽃을 가져다 팔겠니? 그냥 모른 척해라.”
 “아빠는.. 모른 척할 게 따로 있지, 저건 옿은 일이 아니잖아. 사람들 얘기 들어보니까 우리 집에서 사다 갖다 놓은 꽃들을 다음날 새벽에 몰래 가져다가 반값도 받지 않고 팔고 있나 봐.”
 “옳고 그른 건 누가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야.”
 “그래도 저 할머닌 욕먹을 짓을 하고 있잖아.”
 “민혜야, 다른 사람을 욕해서는 안 돼. 우리도 그 사람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해할 수는 없어도 사랑할 수는 있는 거야.”

 겨울에는 추운 날씨 탓인지 묘소를 찾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나 일요일을 제외하고는 하루 서너 명의 손님이 꽃집을 찾는 게 전부였다. 묘소를 찾는 사람들이 적으니 묘소에 놓여진 꽃도 적었다. 민혜는 꽃을 파는 할머니가 허탕을 치고 가는 모습을 올 겨울 들어 벌써 여러 번 보았다.

 어느 날 새벽, 민혜는 묘소 반대편에 있는 시민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새벽 공기는 상쾌했다. 그때 멀리 보이는 묘소의 중앙 쪽에서 검은 그림자 하나가 보였다. 양쪽 손에 무언가를 들고 느릿느릿 걷고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꽃을 가져가는 그 할머니 같아 보였다. 민혜는 그냥 가려다가 당황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고 싶어서 일부러 그쪽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잠시 후 민혜는 너무 놀라 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희미하게 보이는 그 모습은 할머니가 아니라 바로 자신의 아빠였다. 민혜는 동상 뒤로 얼른 몸을 숨겼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양손에 꽃을 들고 있는 사람은 아빠였다. 설마 아빠가 묘소에 놓인 꽃들을 들고 나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던 일이었다. 민혜는 계속 아빠를 지켜보았다. 그때 운동복 차림의 한 남자가 거친 숨소리를 내며 아빠의 앞으로 지나갔다. 몹시 당황한 듯한 아빠는 양손에 들고 있던 꽃다발을 묘소에 다시 두고는 주위를 살피며 걸어 나왔다.

 “아빠...”
 “어, 아침부터 여긴 웬일이냐?” 아빠는 몹시 놀란 표정이었다.
 “아빠, 근데...왜 묘지 앞에 있던 꽃다발을 들고 있었어?” 민혜는 더듬거리며 물었다.
 “응. 봤냐? 겨울이라 하도 꽃을 사가는 사람들이 없어서 그랬어. 묘소 앞에 꽃이 없어서 그런지, 할머니가 요 며칠째 헛걸음을 하시기에...하도 안돼 보여서 아빠가 꽃을 좀 갖다 놓은 거야.”
 겸연쩍게 웃고 있는 아빠에게 민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민혜의 아빠는 늘 민혜에게 말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거라고. 우리의 삶이 꺼져 갈 때마다 우리를 살리는 건 우리 자신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헌신적인 사랑이라고.

 

= 짧은 글 긴 생각 =

보물
 
- 김관선 -

  우리나라의 국보 제1호는 숭례문 즉 남대문이며, 보물 제1호는 흥인지문으로 동대문이라고도 불립니다. 국가가 지정한 보물을 비롯해서 세상에는 많은 보물이 있습니다. 객관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도 어떤 사람에게는 보물처럼 생각되는 소중한 것들도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보물들의 한결같은 특징은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매우 소중하게 보관됩니다. 몸에 두르고 다니거나 관람시키는 것도 소비의 한 형태이긴 해도 일반적인 소비와는 다른 면이 있습니다.

 이런 보물 이야기나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진정한 의미의 보물은 무엇일까를 말하고 싶습니다. 금고에 보관하고 온갖 첨단 경비시스템을 동원해 지켜야 하는 보물들은 진정한 의미의 보물일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분명히 역사적, 학술적, 예술적, 기술적 가치를 지닌 물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보물은 그것을 사용해 배고픈 누군가의 식탁에 오르는 밥이 되고, 목마른 누군가에게 마실 물이 되고, 추위에 떠는 사람을 따듯하게 입힐 옷이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현실적 힘이 되고 공부할 수 있는 뒷받침이 되는 것이 진정한 보물입니다.

 ‘하늘에 쌓아두는 보물’이란 내게 주신 물질을 선하게 쓴 것의 총칭입니다. 소유를 팔아 구제하라고도 하셨습니다. 소유하고 있을 때는 보물이 아니었는데 그것을 팔아 누군가에게 베풀고 나니 비로소 보물이 되는 것입니다. 금고에 보관된 금괴는 보물이 아닙니다. 몸에 두른 귀금속, 다이아몬드가 보물이 아닙니다. 그것을 팔아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기 시작할 때 그것들은 비로소 보물로 반짝거리게 됩니다.

 교회에는 보물이 많습니다. 성도들이 헌금한 돈을 통장에 쌓아두지 않고 그것으로 북한을 먹이고, 지구촌 곳곳에 물이 없는 곳에 우물을 파주고,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살피고 암수술을 해주는 일을 하니 보물입니다.
 금고가 아닌 가슴에 보물을 품읍시다. 하늘에 쌓아둔 결코 사라지지 않는 보물, ‘허비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런 보물이 많아지는 한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세상은 그런 보물들로 인해 아름다워집니다.
 우리나라의 나눔 수준은 아프리카 수단 정도라는 충격적인 발표를 보았습니다. 세계 40위 밖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좀 나아진 것이 이 정도입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기부도 사실상 회사돈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세계 몇 위의 경제대국이라고 하는데 나누는 부분에서는 참 보잘 것 없습니다. 번쩍거리는 보석이나 금덩어리가 아닌 참된 보물을 누리고 그것을 유산 삼읍시다. 추위에 얼어 죽는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보물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자녀들에게 최고의 보물을 상속하는 것입니다.

 

= 주제가 있는 글 =

거대한 역사를 향한 미래를 열어라

- 이만열 -

 어릴 적 나는 그저 목회자가 되는 길만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라고 교훈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3대째 믿음의 가정에서 자란 나에게 이 일은 나면서부터 주어진 소명과도 같았다. 그래서 신학을 전공하려고 했는데 주변에서 다른 학문을 먼저 하고 신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고 조언했다. 그래서 선택한 학과가 사학과였다. 대학 입학 초기에는 서양사에 역점을 두고 교회사와 기독교 교리사 등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가 재학 중 군에 입대하게 되었는데 어떤 장교에게 국사 교안을 짜달라고 부탁받은 것을 계기로 전공을 한국사로 바꾸게 되었다.

 1970년 숙명여대 한국사학과 교수가 된 후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그 무렵 목회의 길만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내 고정관념이 변하기 시작했다. 어느 자리에 있든 부르심에 따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소명에 충성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임을 깨닫고 목회자의 길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역사학자로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찾고 이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개별적인 사실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알기란 인간의 지혜로는 쉽지 않다. 하지만 역사는 앞과 뒤의 사실이 유기적인 관련을 맺기에, 큰 흐름을 놓고 보면 권선징악의 방법으로 역사를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다. 수많은 세계사에서 당장은 정의가 악에 정복당하는 것 같지만 긴 호흡에서 보면 그렇지 않다. 이것이 그 대부분이 역사로 구성된 성경이 보여주는 교훈이요 진리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의 숱한 고난의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일제 지배 하의 우리 민족은 희망을 발견할 수 없었지만, 오늘날의 시점에서 보면 함석헌 선생의 말과 같이, 그것도 하나의 축복이었음을 깨닫는다. 고난을 경험했기에 지금 고난받고 있는 다른 민족의 눈물을 씻겨줄 수 있고 그들의 아픔에 동참할 수 있는 성숙함을 갖게 되었다. 과거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당한 많은 이들의 고통과 절망도 그때는 암울해 보였지만, 그들의 희생이 거름이 되어 이 땅에 평화와 인권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우리는 그들에게 부채의식을 갖고 있으며 무임승차하면 안 된다는 각오를 갖게 된다. 이처럼 거시적인 관점에서 역사의 주관자인 하나님의 섭리를 느낄 때마다, 과거에 펼쳐진 역사적인 경험을 일깨우고 다시 성숙한 미래로 나아가도록 고민하는 역사학자로서의 사명을 다시 한 번 깨닫고 감사한다. 역사가의 주된 임무는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를 평가하고 비판하며 편견 없이 재해석하고 창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그가 속한 시대와 사회의 제약을 무시할 수 없기에 역사적 사건을 재해석할 때, 그 당대의 가치관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역사가는 겸허하면서도 비굴하지 않은 주관을 가져야 한다.

 나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국사편찬위원회 8대 위원장을 역임했다. 한국사를 연구하고 편찬하는 국가기관의 책임자가 되면서 내가 중점을 둔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관료생활에서 권위주위를 타파하고 가능한 많은 사람을 접하고 그들의 의견을 존중하려고 했다. 연구직이나 행정직, 비정규직 직원들의 일을 챙기며, 가장 낮은 직위에 있는 직원부터 배려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당시는 일본과 중국의 역사 왜곡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면서 국사교육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관심이 증폭되고 있었다. 역사를 제대로 볼 때 국민은 건강한 미래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 교육부에서 국사 교육을 강화하려 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한계에 부딪혀 국사교육 강화를 위한 실질적 움직임이 미미했다. 나는 이런 과정을 보면서 국사교육이 학생에 국한되지 않고 일반 국민을 상대로 좀 더 확대되고 발전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방안으로 ‘조선왕조실록’을 데이터베이스화해서 인터넷에 올리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추진했다. 일반인들을 위해 ‘조선왕조실록’을 정리해서 번역본, 이미지 파일까지 국사편찬위원회 사이트에 등재했다. 누구든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검색까지 편리해졌다. 이렇게 일반 국민들이 실록에 접근할 수 있게 되자 조선시대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무척 활발해졌다. 그리고 1년여의 기간을 두고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준비했다. 어느 정도 시험의 틀이 완성된 후 기업체들과 한국사능력검정시험 활용 방안을 논의하다가 퇴직하였지만, 퇴직 두 달 후 1회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 실시되었을 때, 남달리 감회가 깊었다. 국사의 대중화를 위한 첫 걸음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 나이 일흔 넷, 강의를 하다보면 가끔 연대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아 기억력이 쇠퇴함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몇 가지가 있다. 먼저 나만의 역사적 관점에서 본 ‘한국 기독교 역사’와 우리 손자 또래들이 보기 좋을 ‘알기 쉬운 한국사’를 쓰고 싶다. 그리고 정말 소중하게 가르쳐야 할 ‘우리나라 독립운동사’를 쓰고 싶다. 역사의 가치는 우리가 무엇을 해왔는가, 그리하여 우리가 누구인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가르쳐 주는 데에 있다. 예부터 역사책에는 거울 감자를 많이 사용한 것도 우리를 비추는 거울로 삼으라는 이유에서다. 이런 일을 하게 된 것은 우연 같지만 ‘하나님의 뜻’으로 믿는다. 역사를 공부하고 가르치는 일을 했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자부심을 느낀다. 역사공부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면 내 인생이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내 역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 건강하게 삽시다 =

 면역력 키워주는 7가지 생활습관

- 이현주 -

 매해 신종, 변종 바이러스들이 출몰하고, 점점 그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남극에서 신종아데노바이러스가 발견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이러한 때에는 평소 자신에게 맞는 생활패턴을 꾸준하게 유지해 어떤 바이러스도 이겨낼 수 있는 몸을 만들어 주는 것이 최상책이다. 다음의 7가지를 기억하면 면역력을 키울 수 있다.

첫째, 생활 리듬을 지킨다
요즘처럼 기온 변화가 잦은 시기엔 생활의 리듬을 깨뜨리는 불규칙한 생활은 면역력을 떨어뜨려 크고 작은 질병에 시달리게 하는 원인이 될 뿐 아니라 또 평소에 앓고 있던 병을 더 심하게 만든다. 평소 8시간 정도의 충분한 수면을 취하고,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는 생활습관을 유지하면 반대로 면역력이 증강된다. 특히 수면패턴이 중요한데, 저녁 11시부터 새벽 3시까지는 가장 깊은 잠을 자는 시간이므로 반드시 잠자리에 드는 것이 좋다. 면역력을 강화하는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둘째, 술을 줄인다
급격하게 추워지는 날씨에 귀가 길 한잔 술을 찾는 사람이 늘어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술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체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혈청의 항균작용도 약해지고 세포매개성 면역작용이나 백혈구의 역할에도 영향을 미쳐 세균을 빨리 제거하지 못하게 한다.
술을 어느 정도 마시면 면역력이 떨어지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지만 만성적으로 자주 과음을 하는 경우 백혈구 수 자체가 감소되기도 한다. 또, 감기나 독감, 중이염, 축농증 등의 흔한 감염이 있을 때에도 술을 마시면 회복이 늦고 심한 경과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셋째, 손을 잘 씻는다
평소 영양제나 비타민 등의 섭취보다 면역력 감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위생 관리에 대해 점검을 해보자. 면역력 강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손씻기다. 손만 제대로 씻어도 감염질환의 60% 정도는 예방된다. 실생활에서 돈을 만진 후, 애완동물과 놀고 난 후, 코를 푼 후, 기침한 후, 재채기한 후, 음식 차리기 전, 또는 음식 먹기 전, 조리 안된 식품, 씻지 않은 식품이나 육류를 만진 후, 기저귀를 간 후, 환자와 접촉하기 전∙후, 상처 만지기 전∙후, 화장실 나올 때, 병균이 가장 많이 묻어있는 수도꼭지나 문손잡이나 공중전화기를 만졌을 때 꼭 손을 씻는다.

넷째, 스트레스를 다스린다
현대 사회의 심리사회적 갈등에서 생기는 스트레스를 줄이려면 억지로라도 자주 웃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면역력을 증가시키는 한 방법. 스트레스가 우울증, 불안장애와 같은 정신과적 질환의 중요한 원인임은 잘 알려져 있다. 그 밖에도 심혈관계 질환, 감염성 질환, 암, 자가면역질환과의 광범위한 연관성이 보고돼 있다.

다섯째, 담배를 줄인다
흡연은 몸에 스트레스를 주는 대표적인 인자이므로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금연하는 생활습관이 필요하다.

여섯째, 햇볕을 가까이 한다
햇볕이 우리 몸에서 비타민D를 합성시키는데 이 물질이 면역력을 증가시킨다. 사무실에 있지만 말고 밖에서 1시간 정도는 햇볕은 쬐는 것이 좋다.

일곱째, 가벼운 운동과 스트레칭을 한다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면역력을 높이는데 도움을 준다. 가벼운 운동은 깊은 호흡과 긴장 이완을 통해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자율신경의 하나인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시키게 되고, 부교감 신경은 면역계를 자극한다. 또한 운동은 면역 세포와 림프액의 흐름을 활발하게 한다.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병원균의 침입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백혈구 숫자가 증가한다. 10분 정도 걷기나 계단 오르기 정도도 운동이 될 수 있다. 물론 출퇴근을 위해 걷는 시간도 운동량에 포함시킬 수 있으나 가능하면 그 외의 시간에 편안한 마음으로 운동에 집중해서 걸을 수 있는 시간이 있다면 마음의 여유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인내(人匂:사람 사는 냄새) 이야기 =

저는 행복한 사진가입니다.

   - 이강 -

 그의 거처인 작업실에서 병원을 찾아가려면 40여 분 남짓을 걸어 경사가 급한 고개까지 넘어야 한다. 거의 매일 찾는 이 길이 익숙할 때도 되었건만, 구슬구슬 흐르는 땀방울은 어쩔 수가 없다. 병원은 한적한 산마을에 깊숙이 들어앉아 있다. 청록의 산을 병풍처럼 두른 산 아래 편안히 들어앉은 풍경이 고요하고도 한가롭다. 그 병원의 앞마당이자 산책로에서 한가로이 거닐거나 그늘 아래에서 쉬고 있는 환자들의 모습은 다소 무료하고도 권태롭다.

 “병이 생기기 전에는 모두 바쁘게 살아가던 분들이라, 아무래도 심심하지요. 그래서 누가 면회를 온다거나 아주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면 아주 즐거워합니다. 저 역시도 병원에 있을 때에는 비슷했습니다. 오늘은 아마도 저를 하루 종일 기다리고 계실겁니다. 하하”

 발걸음을 서두르는 그 역시 한때는 이 병원의 환자였다. 2010년 간경화 진단이 내려지고 거의 사망선고까지 받을 때까지 그는 작은 회사를 건실하게 경영하던 중소기업의 사장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환자가 그렇듯이 병원에서 좀 쉬라는 말을 애써 외면하곤 했다. 어쩌면 그때 일중독에 빠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병원에 입원해 생활하면서 제 자신의 삶을 거울에 비추듯 다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무언가를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지요. 다행히 젊은 시절부터 취미로 해 왔던 사진이 그 답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매일 한 장 한 장 환자들의 웃는 얼굴을 담아 보자는 생각이었지요. 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몇 차례 쓰러지며 생사의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간경화가 더 이상 악화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제게 남을 위해서 살라는 소명이 주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그리고 환자들과 가족들이 사진을 받아들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제가 치유되는 것 같더라고요.”

 건강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사진 작업에 매진했지만 그 작업이 그의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말기암을 앓고 있는 환자들이 대부분 병원생활에 지쳐 찌푸려진 자신의 얼굴을 보이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한동안 그의 카메라 앞에 아무도 세울 수가 없었다. 병마가 제일 먼저 앗아간 것은 환자들의 웃음이었다.

 “병마와 싸우며 지친 환자들은 제일 먼저 웃음을 잃어버립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통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점점 무표정하게 되어 가지요. 그런 그들의 얼굴에서 미소를 찾아내기란 매우 힘든 작업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그럴 때마다 병원 앞 산마루에 홀로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마치 자신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용기를 내어 환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환자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따스한 햇살 아래 쉬고 있는 환자들의 모습을 작게 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점차 환자들의 옆이나 뒷모습, 병원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사진에 좋은 음악을 곁들여 동영상으로 제작해 환자들에게 보여 주자 환자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점점 변화가 일어났어요. 자연 속에서 담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제 사진 작업에 관심을 갖는 환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환자들은 자신의 모습이 그렇게 추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우리 병원 주위의 풍경이 참 아름답다는 걸 깨닫게 된 것입니다.”

 거의 매일 사진을 찍는 그의 주요 소재는 역시 환자들의 얼굴이다. 그리고 병원을 찾은 환자 가족들과의 단란하고 행복한 시간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주제다.
 “사실 아프고 나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또 다르게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이 어쩌면 가족들과의 행복한 추억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는 가장 편안한 시간이기도 합니다. 가족들과 찍은 행복한 사진 한 장은 매일 병마와 싸우는 환자들에게 큰 힘이 됩니다.”

 그래서 이 병원의 곳곳에는 그가 찍어 선물한 환자들의 웃는 얼굴이 걸려 있다. 일인실이든 다인실이든 그가 촬영한 사진들로 벽면이 가득 채워져 있다. 벌써 3년째 요양 중인 유종상 씨의 병상 머리맡에도 사진이 걸려 있고, 이제 입원한 지 몇 개월이 안 된 김숙자 씨의 작은 앨범에도 그가 찍어준 가족사진이 첫 장을 채우고 있다. 사진 속의 주인공들은 모두 활짝 웃는 모습이다.

 “어쩌면 바쁘게 살아오면서 자신의 웃는 얼굴과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과의 행복한 모습 모두 잊고 지내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다시 건강한 삶을 찾아 활짝 웃는 모습을 찾는 것은 환자들에게 가장 간절한 바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두 아름다운 사연으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산 아래 자리하고 있는 그의 작업실에는 이미 가족의 곁을 떠나버린 환자의 사진이 걸려 있기도 하다.

 “다소 작업이 고단하고 힘들 때마다, 한 번씩 바라보는 사진입니다. 참 젊고 밝은 분이셨는데, 안타깝게 떠나가셨지요. 그때 찍은 환자와의 행복한 가족사진이 마지막 선물이 된 셈입니다. 한 장의 사진은 선물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기록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아마도 고인의 가족들은 그 마지막 사진에서 웃고 있는 그분의 모습을 오래도록 기억할 거에요.”

 어느덧 그가 말기암 환자들의 사진촬영을 시작한 지 3년째가 되었다. 그의 사진은 대부분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는 병원에서 멀지 않은 몇 곳을 정하여 ‘자연 사진관(내추럴 스튜디오)’이라고 명명했다. 이는 그가 생각하는 자연으로 마음을 치유하고 웃음으로 건강을 찾아주는 ‘포토테라피’와 관련이 깊다.

 “환자들의 사진은 대부분 이곳 자연을 배경으로 찍습니다. 병원 앞의 자연 풍경은 환자들에게 건강한 에너지를 줍니다. 봄에 싹을 틔우는 작은 꽃 한 송이에서 생명을 느끼고, 청록의 여름 숲에서 물소리, 새소리를 들으며 청량하고 맑은 에너지를 얻기도 합니다. 풍요로운 가을 숲길은 마음의 안정을 찾아 주기도 하지요. 그렇게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하얀 눈에 새로운 발자국을 찍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연 안에서 비로소 활짝 웃게 되는 것이지요.”

 2010년부터 카메라 뷰파인더에 환자들의 웃음을 담으며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전하고 있는 그. 벌써 3년째 찍고 있는 환자들의 사진을 모아 작은 전시회도 열고, 환자들이 직접 쓴 시와 함께 시화전도 열고 있다.

 그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그의 사진작업에 도움을 주고 있는 지인들과 함께 작은 음악회를 열어 음악치유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전시회를 개최하는 이유는 환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심어 주고 환자들에 대한 외부의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다. 그래서일까. 환자들은 이제 그를 ‘말기암 환자 전문사진사’ ‘포토테라피스트’ ‘웃음 전도사’라 부른다.

 그의 뷰파인더에 담긴 환자들의 웃음이 초록빛 숲처럼 건강하고, 작은 꽃들의 웃음처럼 싱그럽기만 하다.

 

= 이호의 인물 =

희망을 노래하는 아버지
 - 김문영 -

 ‘가거도 섬 소년, 철공소의 용접공, 프로 권투선수, 세계적인 드라마틱 테너’ 이 모든 수식어가 한 사람, 조용갑 씨를 지목하고 있다. 그는 2011년 10월 SBS ‘스타킹’에서 아이돌 여가수 수지에게 세레나데를 불러주어 화제가 되었고, 지난 2월 ‘오페라스타 2012’에서 오페라 가수에 도전하는 스타들의 멘토이자 심사위원으로 출연해 정통 오페라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조용갑 씨의 인생이야말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막힌 반전드라마라 할 수 있다. 올해 발간한 그의 책 ‘희망 오페라’에서 그는 ‘꿈과 희망은 단막극으로 끝나지 않는다.’고 했다. 인생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을 붙드는 결연한 의지의 연속극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에게 노래는 삶의 호흡법이고 인격의 표현이다. 무대 위로 올라선 화려한 이력보다 웅장한 소리를 받쳐주는 그의 지난한 인생 여정 가운데 깎이고 다듬어진 인품에 매료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열두 살 연하의 아내 최에스더 씨는 남편이 진심을 다해 노래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며 어려운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는 것을 볼 때 행복하다. 그의 노래와 이야기에 실린 꿈과 희망의 무게를 잘 알기에, 그와 함께 하는 일이 그녀의 꿈이고 희망이다.

 1997년, 성악하기에는 다소 늦은 나이에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습니다. 대한민국 최서남단 가거도 출신의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라니,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일이었죠. 꿈꾸지 못할 자가 꿈을 꾸고, 기댈 데 없는 자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기적이고 은혜입니다.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홀로 서울로 상경하여, 세차부터 철공소 용접까지 안 해본 일이 없습니다. 혈혈단신으로 모든 일을 헤쳐나가야 했지만, 이상하리만치 ‘희망’은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타향살이 설움이 클수록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겨주세요.”라는 기도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야간고등학교 다니던 시절, 짝궁을 괴롭히는 못된 녀석들에게 복수하고자 권투를 시작했는데, 그 작은 사건이 또 다른 무대를 열더군요. 제대를 하면서 프로권투로 전향했고, 세계챔피언을 꿈꾸며 앞뒤 안 가리고 연습에 매진하며 경기를 치뤘습니다. 당시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했는데, 퉁퉁 붓고 찢기고 멍든 얼굴로 나와서 찬양하는 저를 보고 교회 어르신들과 목사님께서 많이 우셨지요. 아들처럼 여기시며 제가 잘 되기를 기도해주셨던 고마운 분들입니다. 그래서인지 고되고 힘든 날이 계속되어도 알 수 없는 기쁨이 넘쳤고, 눈물을 흘리더라도 다시 일어설 힘이 생겼습니다. 그러다 목사님께서 제게 권투보다 노래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시고 성악 공부를 권유하셨습니다. 그때 마침 이탈리아의 테너 가수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하이 C의 왕’이라는 카세트테이프를 구입해서 듣고 있던 터라서 매우 놀랐습니다.

 최고의 고음역대를 자랑하는 파바로티의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미친 듯이 연습했는데, 점점 자신감도 생겼고 재미가 붙더군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지만, 제 안에 있는 열망은 가능성을 향해서만 움직였습니다. 마지막 챔피언 리그에서 판정승으로 무참히 깨지고 나서 권투를 접었고, 목사님의 후원으로 이탈리아에서 성악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조수미 씨가 졸업한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을 졸업했고, 세계적인 거장 테너 쟌니 라이몬디와 소프라노 레나타 스코토를 사사했습니다. 2000년에 ‘라모엠’으로 이탈리아 오페라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해서 300회가 넘도록 유럽 오페라 무대의 주인공으로 활약했죠. 국내에서는 2011년 7월 대한민국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토스카’의 카바라도시 역을 맡아 첫 공연을 했습니다. 희망이 절망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것을 그렇게 저는 온몸으로 경험해왔습니다.

 어부로 사는 것이 너무나 고되셨던 아버지는 살갑게 삼 남매를 돌아볼 여력이 없으셨습니다. 술과 폭력, 도박을 일삼으며 무너져가는 아버지의 모습에 분노했지요. 어머니 앞에서 “나는 절대 술 마시지 않고, 성공해서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아버지는 저희 남매들을 ‘재산목록 1호’라고 외쳐 부르곤 하셨습니다. 그 말이 가슴에 남아서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미워할 수는 없었지요. 어머니는 워낙 강인한 분이시라, 우리가 주어진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불호령을 내리셨지요. 그 덕에 어떤 일이든 주어지면 책임을 다하고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훈련할 수 있었습니다.

 누군가를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게 해준 건 사랑하는 아내, 에스더입니다. 아내가 서울예고를 졸업하고 이탈리아로 왔을 때가 열아홉 살이었죠. 로마한인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면서 처음 만났는데, 띠 동갑이라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진 못했어요. 그런데 지인의 댁에서 긴 치마를 입고 음식을 나르는 그녀의 참한 모습을 보자 설레더군요. 그렇게 지켜만 보다, 어린이주일 야외행사를 위해 물품을 사러 함께 나갔다가 교통사고가 났습니다. 당시 잠깐 마트에 들렀다가 차에 올랐던 그녀는 안전벨트를 맬 틈도 없이 앞쪽으로 튕겨 나가 머리를 심하게 다쳤지요. 저희 둘다 응급실로 급히 실려 갔고, 행사장에서 기다리던 교인들이 놀라서 병원으로 달려오셨답니다. 상황이 좀 정리되자 교인들이 “에스더가 머리를 다쳤는데, 혹시라도 잘못되면 조 선생님이 책임져야 해요.”라고 농담을 던지셨습니다. 은근히 그 소리가 좋더라고요, 속으로 ‘책임지라면 져야지!’했습니다. 그때부터 통원 치료를 같이 받으면서 급격히 친해졌죠.

 그렇게 지내던 중 아내가 성악 레슨을 해달라기에, 3년 동안 공짜로 해줄 테니 3년 이후에 모든 콩쿠르 상금을 7대 3으로 나누자는 조건을 달았습니다. 제가 7이었는데도 에스더는 레슨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알면 알수록 꾸밈이 없고, 솔직한 그녀의 매력에 빠져들었죠. 특히 자신을 누구와 비교하여 위축되거나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법이 없고, 누가 자기보다 더 잘하는게 있으면 박수를 쳐주고 해맑게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 저런 여자 만나기 힘들겠다.’ 싶었습니다. 장모님의 전적인 지지로 결혼할 수 있었고, 아내는 어린 나이지만 속이 깊고 착해서 항상 “우리 남편 천재!”라며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게다가 저의 붕어빵 딸 수아와 아들 나단까지 선물로 얻었으니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을까, 고맙다는 말로는 부족한 듯합니다. 정말 좋은 남편, 다정한 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제 삶이 아이들에게 원칙과 기준이 되길 바랍니다. 저희 부부가 아이들에게 모범이 되려고 애쓰는 이유지요. 아내는 ‘아이들이 지치고 힘들 때마다 엄마에게서 안식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어디 애들뿐이겠습니까? 아내는 제게 최고의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처음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정식으로 성악을 배워본 적 없던 터라, 권투하던 식으로 죽어라 연습했습니다. 그러다 성대 결절이 왔지요. 전문의가 수술하지 않으면 목소리를 아예 잃게 된다는 겁니다. 1천여만 원의 수술비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가슴이 터져나갈 듯 서글퍼지면 엎드려 기도했고, 상상으로 발성연습을 하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동안 소리를 함부로 다루어 왔던 것을 뼈저리게 반성하며, 이미지를 통해 아름답게 소리 내는 법을 터득해갔지요. 하지만, 6개월이 지나도 소리가 나오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저도 모르게 찬송을 불러보았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 데 없는 자.” 아무리 애를 써도 나오지 않던 노래가 무리 없이 흘러나오는 겁니다. 정말 놀랍고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이후 노래를 잘 부르려고 애쓰기보다, 노래에 마음을 담으려고 노력합니다. 제게는 노래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

 지난 해 로마에서 오페라 활동을 한참하고 있을 때 다리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다친 적도 없는데 고름이 나오고 피부가 까맣게 썩어갔지요. 한국에 들어와 여러 병원을 다녀봤는데 무릎을 절단해야 한다, 90퍼센트 피부암이라는 등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원자력병원에서 결과를 기다리는데, 어려운 고아와 노인들을 돕겠다고 했던 다짐이 떠올랐습니다. ‘목발을 짚고 다니는 한이 있어도 어려운 이들에게 희망을 심는 일을 당장 해야 한다.’라고 결단하고 나서, 병원에 갔더니 ‘마데카솔만 발라도 낫겠다.’는 겁니다. 황당했지만 삶의 전환점을 이룬 사건이었죠. 다시 로마로 돌아가서 돈이 없어서, 목이 망가져서 꿈을 포기하려는 유학생들을 설득해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저 또한 가장 어려운 순간마다 누군가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서서 길을 갔습니다. 이제 제가 나누어야 할 차례라고 생각합니다. ‘희망은 은혜와 노력의 합작품’입니다. 희망의 빚을 지고 사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노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생각의 여유 =

비언어적 요소의 힘

   - 홍의숙 -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 자신이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로 인해 당황한다. 최근 관계가 돈독한 이에게 문자로 인사를 건넸는데, 오랜 시간 답이 오지 않아 답답했었다. 오해가 있던 것인지,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를 돌이켜보며 마음 아픈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알고 보니 통신사의 문제로 문자가 전달되지 않아 생긴 오해였다는 것이 아닌가. 허탈하기도 하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에 둘이 마주보았을 때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며 따뜻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대한민국 모든 커뮤니케이션이 휴대전화로 이루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완벽한 것은 없으며 시간이 지나면 아무리 발달된 과학도 모두 쇠퇴하며 사라져가는 것이 이치다. 예상치 못한 소통의 문제가 생겼을 경우, 기계에만 내 의사를 맡기지 말고 직접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많은 문제가 해결된다. 그 이유는 한 줄의 문자가 절대 담을 수 없는 희로애락이 얼굴과 음성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메라비언의 법칙에 따르면 대화의 구성요소 중 언어적 요소는 7%이지만 비언어적 요소는 93%로 나타난다.

비언어적인 요소의 힘은 사랑의 마음으로 상대방과 마주하며 대화를 나눌 때 가장 극대화된다. 인간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인 신앙과 가장 보편적 가치인 ‘사랑’을 표현하면 세상의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 알아봅시다! =

똥, 그는 누구인가?

  - 남호탁 -

 삶을 굴러가게 하는 두 개의 바퀴는? 먹고 싸는 것이다. 그럼 사랑이니 우정이니 지식이니 하는 것들은 중요하지 않단 말이야? 중요하지 않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먹고 싸는 두 개의 바퀴가 튼실할 때 비로소 나머지 것들 역시 온전해질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보면 먹고 싸는 것이야말로 인간 조건의 대전제라 할 수 있겠다.

 바퀴가 두 개니까 하나만 멀쩡하면 되는 거지? 천만에. 둘 중에 어느 하나가 튼튼하다고 해서 다른 하나가 커버되는 것은 아니다. 둘 다 건강할 때에만 수레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비로소 수레다울 수 있다. 정말? 그럼. 그런데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있음에도 마음이 영 개운치 않은 건 무슨 이유에서일까? 그건 좀 안다 하는 인류가 그 동안 너무나도 공정치 못했기 때문이다. 먹는 것에 대해서는 오냐오냐하면서도 싸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애써 외면하며 노골적으로 냉담한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등을 두드려주는 것은 고사하고 이름조차 부르길 꺼린 것이니, 이런 '싸가지'가 세상에 또 있을까? 늘 인류와 함께 존재했으면서도 정당한 대우는커녕 홀대만 받아왔던 또 하나의 믿음직한 바퀴 그러니까 싸는 것, 배설, 똥에 대해 이제라도 뭐라 말해야 하지 않을까?

 먼먼 옛날, 사람은 적고 세상은 넓었다. 그러다 보니 볼일 보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무 데서나 싸면 그만이었다. 당시는 유목민처럼 이동하면서 생활했기 때문에 똥이나 오물 등에 대해서 고민할 이유라곤 있을 턱이 없었다. 하지만 문명의 발달과 함께 정착 생활을 하면서부터는 이전과는 모든 것이 달라지기 시작했는데 배설로 말미암은 골칫거리도 그 중에 하나였다. 좁은 공간에 정착해서 살아가되, 변변한 화장실은 없다, 그럼 얘기 끝난 거 아니야? 당연히 거리며 골목길까지 사람이 생활하는 주변은 똥오줌으로 넘쳐날 수밖에 없었다.

 기원전이라고 해서 똥오줌을 처리하던 시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기원전 3000년경에 세워진 인도의 모헨조다로 유적에서는 수세식 하수시설이 발견되었고, 기원전 1700년경에 세워진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에서는 똥을 받는 접시형 틀과 나무로 만든 변좌가 갖춰진 수세식 변기가 발굴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메소포타미아나 인더스 강의 계곡, 바빌로니아의 도시우르, 이집트 등지에서 화장실의 흔적이나 변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물론 이는 지극히 일부 특수 계층의 얘기지 모든 이가 이처럼 생활했다는 것은 아니다. 기원전 인류의 대다수가 거리나 들, 언덕 등 아무 데서고 똥오줌을 해결했다는 것만큼은 누가 되었든 부인하기 어려운 명백한 사실임이 틀림없다.

 요즘은 머리가 아프다. 너무 많은 정보를 접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인터넷을 끄고 살 수도 없다. 그러다간 우선 아이들에게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나뿐만이 아니다. 누가 되었든 보다 많은 정보를 손에 넣고자 혈안이다. 하지만 정보가 많다는 게 꼭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다. 정보 자체가 잘못된 것도 많을 뿐만 아니라 정보가 지나치게 많을 경우 꼭 필요한 정보, 유용한 정보를 놓치고 간과하는 우를 범하기 쉽기 때문이다. 똥에 관해 얘기한다 하면서 느닷없이 정보 얘기를 꺼내는 이유는? 똥에 대한 정보 역시 지나치게 많다 보니 정작 똥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향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일반인 중에는 외과 의사인 나보다 똥에 관해 시시콜콜하게 더 많은 것을 아는 이들도 많다. 많이 아는 것이야 나쁠 게 없지만 잘못 알고 있는 게 문제다. 이미 말한 대로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접하다 보면 정작 핵심이 되는 정보를 놓치기 쉽고, 자칫 호기심을 채우는 방향으로 흐르기 쉽다. 나무 하나하나를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숲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숲 전체를 보고 난 이후에야 숲을 구성하는 나무를 파악하자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외국에 파견되는 대사나 특사는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다. 자신을 파견한 대통령이나 국왕의 메시지를 전달할 뿐이다. 자신의 의견이나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가 있다면 대사가 아니거나 대사의 본분을 망각한 자임이 틀림없다. 이런 의미에서 똥을 대사라고 하는 것이다. 똥은 몸이 개개인에게 들려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심부름꾼이다. 그렇기에 똥은 똥 자체로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인간은 자신의 신체를 지켜주는 많은 심부름꾼, 하인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들이 없다면 인간은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지키고 유지해나갈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중대한 역할을 맡은 우리 몸의 하인 중 하나가 바로 똥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 몸의 심부름꾼인 열이나 통증에 대해 생각해보자. 열은 반갑지도 않을뿐더러 지극히 위험한 존재다. 체온이 섭씨 39도만 넘으면 제아무리 천하장사라 해도 맥을 못 춘다. 불과 2도 차이인데도 불구하고! 달 위를 걷고 화성에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인간이 단 2도의 온도 차이에는 속수무책으로 무기력한 것이라니, 우습고 아이러니하다. 천하장사라 할지라도 이 지경인데 아이들이야 어떻겠는가? 눈동자가 돌아가고 경련까지 일으키기 일쑤다. 아이도 아이지만 이쯤 되면 아이를 지켜보는 엄마가 먼저 까무러칠 지경이 된다.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열은 분명히 반갑잖고 위험한 존재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렇게만 보는 것은 지극히 단편적이고 편협한 생각이다. 열은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존재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열이 없으면 인간의 생명은 지극히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고 말기 때문이다. 열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인간이라는 생명체는 이내 지구에서 멸종하고 말 것이다. 충수염(맹장염)에 대해 생각해보자. 염증이 생긴 충수를 그대로 두면 이내 곪아 터져 배 안은 고름으로 뒤덮이게 되는데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복막염이라고 한다. 물론 복막염을 그대로 내버려두면 인간은 사망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이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왜? 바로 열이나 통증과 같은 충성스러운 하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충수돌기에 염증이 생기면 열이란 하인이 즉각 행동을 시작한다. 그래서 충수염에 걸린 사람은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통증이라는 하인도 즉각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래서 충수돌기에 염증이 생기면 우측 아랫배가 아프고, 살짝만 건드려도 자지러지게 놀라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열이나 통증같은 충성스러운 하인이 있기에 사람은 충수염에 걸렸음을 알게 되고 손을 써서 생명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 충수돌기가 곪아 터져 가는데도 열이나 통증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무런 불편 없이 밥을 먹고, 회사로 출근하고, 학교에 가고, 잠을 자다가 어느날 갑자기 영문도 모른 채 죽고 말 게 뻔하다. 이런 맥락으로 볼 때 열이나 통증은 달갑지 않은 존재가 아니라 진정 고마운 존재다. 아이가 열이 난다며 병원을 찾는 엄마 중에는 우선 아이의 열부터 내려달라며 오만상을 찌푸리며 불만을 터뜨리는 이가 많다. 열이 나는 아이의 손을 이끌고 병원으로 달려온 엄마의 마음이야 충분히 이해하지만 안타까운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열이 문제가 아니라 열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열이 난다는 것은 아이의 몸에 문제가 있으니 그대로 두면 위험하다는 신호다. 그런 우리 몸의 충직한 충고와 아우성을 무턱대고 잠재우려고만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까?

 현대 의학도 속수무책인 강적을 들라면 단연 암을 꼽을 수 있다. 도대체 암은 왜 그다지도 무서운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인간의 생명을 지켜주는 충실한 종인 열이나 통증 같은 하인들이 암 앞에선 옴짝달싹 못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암에 걸린 사람은 자신이 암에 걸렸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열이나 통증 같은 하인이 암의 손아귀를 빠져나와 경고를 줄 때는 이미 늦었다.

똥 역시 열이나 통증같이 인간의 생명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주는 우리 몸의 심부름꾼이자 하인이다. 이런 이유로 똥을 우리 몸의 대사라고 하는 것이며, 열이나 통증과 같은 반열에 두는 것이다.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똥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변비 끝에 아우성치며 항문으로 몰려가는 누런 똥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적막한 화장실 변기 아래를 휘돌아 은은히 피어오르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대장 깊숙한 곳에서 나서 탐스런 계곡을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가죽피리 소리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없는 변기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엉덩이 아래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물컹한 똥은 누구의 시詩입니까. 싸질러 놓은 똥은 다시 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변기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나의 몸뚱이는 누구의 몸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만해 한용운 선생님께서 화내시려나? 역정을 내시면 달게 받기로 하고. 평범하고 하찮은 저녁노을 하나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고자 했던 한용운 선생님처럼 우리 역시 똥을 통해 우리 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마음가짐이 없다면 똥에 관해 속속들이 안다 한들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의학을 접할라치면 머리가 아프다. 의사인 나도 그렇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맺을까 한다. 서민의 생활상이나 풍속을 즐겨 그린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얀 스테인의 작품이 있다. 앉아 있는 여자는 환자고 서 있는 남자가 의사다. 의사가 왕진을 왔는가 보다. 그런데 그림을 유심히 살펴보면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있다. 바로 요강이다. 이는 무슨 의미일까? 의사가 진찰을 하는 데 있어 환자가 눈 똥이나 오줌이 더없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이렇듯 똥오줌은 질병을 진단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이 되면서도 중요한 정보 제공자라 할 수 있다. 아무리 의료가 발달해도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본에 충실한 이 그림은 언제 봐도 의사나 환자 모두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우리 모두 기본으로 돌아가자. 이제부터라도 우리 몸의 충직한 하인이자 전령인 똥오줌을 홀대하지 말고 친근히 대하자. 그렇게 할 때 똥오줌 역시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 좋은 생각 =
 
빛나는 발명가

- 이귀훈 -

 내가 인간극장을 제작할 때 제일 어려운 것은 출연자 선정이다. 나는 처음 만난 예비출연자의 얼굴에서 후광이 비치는가를 선정의 기준으로 삼는다.

 남원에 사는 농부 발명가 허정만 아저씨도 첫눈에 후광이 비친 사람 중 하나였다. 몸무게 100키로가 넘는 아저씨는 볼륨감 있는 배, 웃으면 가늘어지는 눈, 튀어나온 광대뼈가 발그레 물들어 있는, 산타 같은 외모의 사나이였다. 60세 가까운 나이에도 발명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은 아저씨의 작품은 셀 수도 없을 정도. 이를테면 땅속 찬 공기를 이용한 에어컨, 자동으로 쌀가마니를 싣는 기계, 아침마다 자동으로 열리는 커튼 등. 그것을 발명한 때가 10-20년 전이었으니, 정말 시대를 앞선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저씨의 비극은 그 노력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데 있었다.

 아내인 점순이 아줌마는 자동 커튼의 장식물을 뜯어놓는가 하면 축사를 개조한 아저씨의 연구실로 가는 엘리베이터 밑에 장작을 쌓아놓아 사용을 못하게 하는 등, 일등 훼방꾼이다. 그녀에게 남편의 발명은 가정 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아이들 장난감’일 뿐이었다. 그래서 아저씨는 발명을 할 때마다 아내 눈을 피해 몰래 해야 했다. 촬영을 핑계로 발명을 할 수 있게 됐다며 좋아하던 아저씨.

 그는 어릴 때부터 동네 고장 난 기계들을 척척 고치는 꼬마 기술자였다. 전라도 일대 최고 기술자였던 작은아버지도 못 고친 기계를 어린 정만이 아저씨가 고친 뒤 “너는 천재의 머리를 지녔다”는 칭찬도 들었다. 나는 정만이 아저씨가 그 이야기를 들려줄 때 그의 얼굴에 살짝 꿈꾸는 듯한 표정이 스쳐 가는 것을 보았다. 어린 시절 들었던 칭찬 한마디는 그의 맘속에 고이 간직한 맑은 샘물 같은 것이었다.

 부모님을 모셔야 했기 때문에 대학을 포기했고, 특출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아내에게 구박받는 한낱 이름 없는 발명가로 남게 된 자신의 인생이 아쉽고 쓸쓸하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조금의 후회도, 원망도 없었다. 조금이라도 더 성공하고 더 높아지려는 요즘, 그렇게 될 수 없는 환경에 불만스럽고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데, “너는 천재의 머리를 지녔다”는 50년 전의 칭찬을 가슴속에 품고 살아가는 정만이 아저씨. 내가 그 얼굴에서 빛을 느낀 것은 그런 순수함과 삶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 생명의 양식 =
 
지혜를 누이처럼, 명철을 친족처럼


“지혜에게 너는 내 누이라 하며 명철에게 너는 네 친족이라 하라”(잠 7:4)

영국 시인 쿠퍼의 ‘한겨울 낮의 산책’이란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지식은 박식함을 자랑하지만 지혜는 자신의 무지를 부끄러워한다.” 지식은 얄팍한 박식을 뽐내는 것이지만 지혜는 예리한 통찰력과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사물을 정확히 판단하며 모든 일을 성공으로 이끌게 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지혜는 자랑이 아니라 겸허한 마음을 갖게 합니다. 인생을 성공으로 이끄는 사람들을 분석해 보면 모두 겸손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기도로 구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풍성히 얻을 수 있습니다(약 1:5). 또 그 마음에 성령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지혜와 총명의 신’이신 성령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올 한 해 지혜를 누이처럼 가까이 하고 명철을 친족처럼 여겨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 독자안내 =

 일상생활에서 재미있었던 사연, 혹은 감동적이었던 실화를 적어 보내주십시오. 추첨을 통하여 소정의 상품과 함께 점자새빛(가을호)에 독자코너에 사연을 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응모는 반드시 우편접수를 원칙으로 하며, 아래 기재된 주소로 점자 혹은 묵자로 작성하여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많은 참여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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